‘쇼핑은 나중, 물류가 먼저’ - 징둥의 한국 진출 전략 분석
미중 무역전쟁과 틈새 실험... 왜 물류를 전면에 내세웠나
중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징둥닷컴(JD.com)이 한국 시장에 조용히 발을 들였다. 올해 5월, 인천과 이천에 물류센터를 개소하며 12시간 내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Temu)처럼 화려한 할인 이벤트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대신, 묵묵히 물류 인프라부터 쌓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물류 우선' 전략은 과연 한국 시장에서 통할까? 그리고 이것이 우리 유통업계에 던지는 진짜 질문은 무엇일까? 징둥의 한국 진출이 갖는 의미와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디미니미스 폐지, 게임의 룰이 바뀌다
징둥의 접근법을 이해하려면 먼저 글로벌 이커머스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4월 2일 행정명령에 서명하여 중국과 홍콩에서 수입되는 800달러 이하 소액 상품에 대한 면세 제도(de minimis)를 5월 2일부터 폐지했다. 이어 7월 30일에는 전 세계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 소액면세 제도를 8월 29일부터 전면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우편, 항공, 해상 운송 모두에 적용되는 이 조치는 중국발 직배송 모델에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린 셈이다.
그 여파는 즉각 나타났다. 테무를 운영하는 PDD홀딩스의 2024년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7% 급감했다. 북미 시장 매출 성장률이 둔화되며, 직배송 기반 초저가 모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알리익스프레스 역시 비슷한 충격에 직면했다.
하지만 징둥은 달랐다. 이미 2022년부터 영국에서 검증한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규제 변화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했다. 물류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2022년), 2년 후 '조이바이(Joybuy)'라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테스트한(2024년) 영국 사례가 그 전례다. 한국에서도 이 시나리오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왜 징둥은 '물류부터' 시작했나
징둥의 전략은 기존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가 초저가 플랫폼으로 시작해 나중에 물류를 개선하는 방식이라면, 징둥은 그 순서를 완전히 뒤바꿨다. ① 물류 인프라 선구축 → ② B2B·풀필먼트 서비스로 네트워크 형성 → ③ 자체 플랫폼 론칭 이라는 3단계 로드맵을 따르고 있다.
이런 접근법의 배경에는 징둥만의 독특한 DNA가 있다. 중국 내에서도 징둥은 알리바바와 차별화된 길을 걸어왔다. 알리바바가 플랫폼 중개 모델에 집중한 반면, 징둥은 직매입과 자체 물류망(JD Logistics)을 바탕으로 한 '풀필먼트형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는 아마존의 모델과 유사하지만, 중국 특성에 맞게 진화한 독자적 형태다.
한국에서도 징둥은 이 DNA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단순히 중국 상품을 파는 데 머물지 않고, 한국을 아시아 물류 허브로 활용하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인천 물류센터는 미국 브랜드의 한국 물류를 대행하고, 동시에 한국 뷰티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이천 센터는 펫커머스 '펫프렌즈'의 전용 물류센터로 운영된다. 이는 단순한 진출이 아니라 생태계 구축 전략이다.
정품과 속도, 징둥의 차별화 카드
징둥이 내세우는 핵심 가치는 '정품 보장'과 '빠른 배송'이다. 이는 기존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안고 있는 약점을 정면으로 겨냥한 전략이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가 가품 논란에 시달리는 동안, 징둥은 직매입 모델을 통해 상품 품질을 직접 관리한다.
배송 속도 면에서도 게임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중국 직구가 평균 7~14일 걸리는 것을 12시간으로 단축했다. 현재는 서울·경기 일부에 한정되지만,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기존 플랫폼들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징둥의 진짜 차별화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물류를 통한 생태계 구축' 능력이다. 단순히 빠르게 배송하는 것이 아니라, 물류 인프라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자들을 엮어내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쿠팡의 로켓배송이나 네이버의 검색 연계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른 접근법이다.
홈플러스 변수, 판도를 바꿀 수 있나
징둥의 한국 전략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수는 홈플러스 매각 이슈다. 복수의 유통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징둥을 포함한 중국계 자본이 홈플러스의 잠재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직 공식 입장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가 지난 3월 외투기업 혜택을 포기하고 내국법인으로 전환한 사례는 이런 시나리오에 힘을 실어준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단순한 기업 인수를 넘어 한국 유통업계 지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사건이다. 전국 140여 개 매장이라는 오프라인 접점과 기존 물류 인프라를 확보하게 되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종합 유통업체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옴니채널의 진화'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실험이 될 것이다. 중국 기업의 디지털 역량과 한국의 오프라인 인프라가 결합될 때 어떤 시너지가 나올지, 그리고 기존 유통업체들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국내 기업들, 새로운 경쟁에 준비됐나
그렇다면 국내 유통업체들은 이런 변화에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빠른 배송의 기준을 만들었고, 네이버는 검색과 연계된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징둥이 가져올 변화는 단순한 경쟁 심화를 넘어선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은 국내 3PL(제3자물류)과 풀필먼트 업체들이다. 이미 펫프렌즈 물량이 기존 팀프레시에서 징둥으로 이전된 사례가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브랜드들이 물류비 단가 50원이라도 아끼려고 한다"며 "징둥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저단가 영업에 나선다면 큰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택배사들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택배사들이 풀필먼트 비즈니스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겪는 혼란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배송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징둥은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와 협력하며 라스트마일 배송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다. 징둥의 진입은 국내 기업들에게 '물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물류를 비용 요소로만 인식해왔다. 하지만 징둥은 물류 자체를 수익 창출의 원천이자 생태계 구축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규제와 정치, 넘어야 할 현실적 장벽들
물론 징둥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외국인투자에 대한 규제가 첫 번째 장벽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M&A는 기업결합심사를 받아야 하고, 국가 핵심 인프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제한될 수 있다. 홈플러스 같은 대형 유통망 인수 시에는 더욱 까다로운 심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한중 관계가 악화될 경우 중국 기업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 수 있고, 이는 사업 확장에 직접적인 제약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커머스 셀러들 사이에서는 '중국 커머스 기업의 국내 물류센터 침투 규제'를 요구하는 국민동의 청원이 진행되기도 했다.
노조의 반발 가능성도 있다. 만약 징둥이 홈플러스를 인수한다면, 고용 불안을 우려하는 노조와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중국 기업의 경영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노동자들의 적응 문제도 예상된다.
우리가 던져야 할 네 가지 질문
징둥의 한국 진출은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첫째, 과연 '물류 우선' 전략이 한국에서도 통할 것인가? 이미 쿠팡, 네이버, 11번가 등이 촘촘한 물류망을 구축한 상황에서, 징둥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필자는 단순한 속도 경쟁보다는 '물류를 통한 생태계 구축' 능력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한국 소비자들이 중국 기업의 서비스를 얼마나 수용할 것인가? 품질과 빠른 배송이라는 징둥의 장점이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서비스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소비자들의 중국 기업에 대한 인식 변화와도 직결된다.
셋째, 정부는 외국 자본의 국내 유통업 진출에 어떤 정책적 대응을 할 것인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면서도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보호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는 단순한 규제 정책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넷째, 국내 유통업체들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단순히 가격이나 배송 속도로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차별화 전략을 찾을 것인가? 필자는 후자에 손을 들고 싶다.
물류 중심 사고로의 패러다임 전환
징둥이 던지는 진짜 메시지는 '빠른 배송'이 아니다. '물류' 그 자체를 전략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고방식의 전환이다. 우리는 그동안 유통을 플랫폼이나 가격경쟁으로만 인식해왔지만, 이제는 그 기반이 되는 물류 역량이 경쟁의 핵심 변수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물류센터를 많이 짓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류를 통해 어떻게 생태계를 구축하고, 어떻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연결하며,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의 문제다. 징둥의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런 관점의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변화를 기회로, 위기를 혁신으로
징둥의 한국 진출은 아직 초기 단계다. 물류센터 운영을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고, 본격적인 플랫폼 서비스는 2026년 전후에나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미 업계는 긴장하고 있고, 변화의 바람을 감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를 단순히 위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유통 물류업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징둥이 가져올 경쟁은 결국 소비자에게는 더 나은 서비스를, 시장에는 더 큰 혁신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도태될 수도 있고, 새로운 규제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에 어떻게 지혜롭게 대응하느냐다.
미중 무역전쟁이 만든 새로운 경쟁 환경에서, 징둥의 '물류가 먼저다' 전략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실험이 한국 유통업계 전체에 물류 중심 사고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의 선택과 대응이 남았다.
먼저 정리하고 갑시다 – 누가 누구인가?
※ 편집자 정리 한 줄: PDD 홀딩스 → 테무 · 핀둬둬(플랫폼) / JD.com → JD Logistics(물류 중심). 두 그룹 모두 중국 기업이지만, 비즈니스·물류 모델이 완전히 다르다.
JD.com vs PDD Holdings 구조 비교표
(중국 이커머스 양대 산맥의 구조적 차이)
테무의 글로벌 3단계 진출 로드맵
※ 편집자 주: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닌, Temu는 ‘데이터→로컬 이해→풀필먼트’의 고리를 연결하며 전방위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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