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만에 뚝딱! 비스포크 냉장고에 숨은 삼성의 SCM 혁신

SCM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등장한 지 30년이 되어 간다.

이제 SCM은 기업경영 혁신의 핫한 테마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관리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했다. 요컨대 SCM은 중요성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Digital Transformation’의 한 분야로 계속 개선해야 하는 분야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19년 6월, 삼성전자에서 발표한  SCM 혁신의 결과물을 눈여겨 볼 만 하다.

바로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 이야기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상기 사진과 같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직접 조합해 볼 수 있다. 아마 이렇게 조합해 본 기록도 모두 빅 데이터로 저장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공급업체가 재고를 미리 확보할 수 있으니까.

비스포크 냉장고는 기본적으로 수요 예측을 근거로 완제품을 생산해 놓고 고객의 주문을 받아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라, 고객이 자기 집에 맞는 냉장고를 맞춰서 주문하면 그때부터 냉장고 완제품을 생산해서 고객의 집에 설치해 주는 제품이다. 가전제품인데 Make to Stock (MTS) 방식이 아니라 Make to Order (MTO) 방식이다.

고객의 주문을 받고 나서 완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MTO 방식의 생산은 그리 새롭지는 않다. 이미 전 마이클 델이 보여준 방식이다. 하지만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가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좁은 나라에 사는 고객을 상대로 Make to Order 방식의 제품을 내놓았다. 생각해 보면 이 방식은 이상할 정도로 땅덩어리가 큰 나라에서 발달했다. 왜 그럴까? 땅덩어리 큰 나라 사람들을 만나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어느 지역이건 서울과 왕복할 정도의 거리는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의 제약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주문 후 약간 시간이 걸리는 생산 형태가 정착할 수 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충분히 대체품을 살 수 있는 땅덩어리 좁은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포인트에서 해결된다. 냉장고는 집 안에서 거대한 물건이고 내구재이자 인테리어 소품이기도 해서, 집 분위기를 바꾸거나 이사할 때 새로 들일 가능성이 큰 편이다.  갑자기 고장이 났다고 해서 급하게 사지는 않는다.(당장에 교체가 시급할 정도의 고장이라면 오프라인 매장에 가는 게 맞지만) 이런 부분에서, 가전제품은 매장 가면 바로 살 수 있으니 Make to Stock일 거라는 편견을 깨버렸다.

둘째, 주문 후 짧은 배송 기간. Make to Stock 방식도 재고가 없으면 확인해서 고객에게 납기를 알려 주는 일이 중요한데, Make to Order 또한 주문 후 생산하기 때문에 배송 기간을 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주문 후 4일 이내 배송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실 상 이틀 간 생산하고 하루 후 공장 출하, 다음 날 고객의 집을 방문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광주공장 냉장고 생산라인. 사진은 비스포크가 아닌 다른 냉장고를 생산하는 장면이지만 잘 보면 세 가지 다른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즉 혼류 생산이다.

공급업체의 공급 능력 면에서는 삼성전자나 LG전자나 모두 이게 가능한 조건은 갖추고 있다. 각각 광주와 창원에 있는 냉장고 공장에서 모두 JIT 기반 생산을 하고 있다. 즉 모듈 공급업체는 필수적으로 어느 정도 재고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미래 생산계획을 어느 정도 공유해 주면 공급업체는 충분히 재고를 확보할 수 있다) 원청 공장에 납품해 왔다.

이번처럼 주문 후 생산을 한다고 해도 과거의 판매 실적을 보고 모듈 사이즈에 따라 어느 정도 재고를 확보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질 게 없다. 비스포크 냉장고 옵션을 선택하는 홈페이지에 가면 색상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런 내구재 생산에서 색상 별로 미리 생산해서 재고를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 분명히 보편적인 색상으로 재고를 들고 있다가 고객의 주문이 확정되면 해당 색상을 도포할 것이다. 과거 SCM 교과서에 나오던 베네통 방식이다. 증거가 있다. 비스포크 홈페이지에서 냉장고 조합을 선택하다 보면 동일 공정을 요구하는 색상으로만 선택이 가능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 고객의 냉장고는 하나의 공정으로만, 그만큼 색상 도포를 고객 인도에 가깝게 최대한 놓았다는 뜻이다.

 

코타 메탈 타입 색상을 선택한 후 새틴/글램 글래스 타입 색상을 선택하려고 하면 위의 사진과 같이 안된다고 뜬다. 다시 말해서 도포 공정이 제각각이면 납기관리가 안될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단순성은 유지한 셈이다.

다만 이번처럼 주문생산이 가능해지려면 한 가지 추가 전제가 있다. 공급업체의 재고 현황을 원청인 삼성전자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4일 이내 배송을 하기 위해서는 공급업체의 재고 현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어느 제조업체나 생산 차질은 부품 재고가 없어서 발생한다. 그런 면에서 비스포크 냉장고는 삼성전자가 공급업체의 재고 현황을 확실하게 알고 있으며, 그런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비스포크 냉장고는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공들여 온 SCM 프로세스 혁신의 산물이다. 공급업체에 대한 정확한 파악, JIT 납품을 위한 공급업체의 사전 재고 확보, 단거리 납품, 혼류생산, 그리고 이 모든 혁신을 조합하여 만들어낸 주문 후 생산 프로세스. 맞춤형 제품을 위해 주문생산을 선택했고, 비싼 주문생산 프로세스를 유지하다 보니 당연히 이 냉장고는 비싸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선택의 폭이고, 혁신적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의 마케팅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 과정이 해외에 확산되며(유럽은 아마 체코 공장이 담당할 것이다) 패밀리허브 냉장고도 비스포크로 만든다는데 앞으로가 더 흥미진진하다.

군 복무를 하며 물류에 뜻을 둔 이후 제조업체 IT일을 하며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중. 은유와 위트 넘치는 독특한 필체와 외부강의 경험으로 더 생생한 물류와 공급망 관리의 세계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는 은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