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를 넘은 지능화, 물류 산업의 다음 단계는?" 고태봉 본부장이 말하는 ‘피지컬 AI’ 전환 전략
챗지피티 등 AI가 글을 쓰는 시대가 이제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시대는 어떨까요?
지금 물류 산업은 단순 자동화에서 '피지컬 AI' 기반의 지능형 시스템으로 전환 중입니다.
엔비디아, 중국, 그리고 CES 2025까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변화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업의 전략, 사고방식, 그리고 산업 간 경계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고태봉 iM증권 본부장의 인사이트를 통해 ‘피지컬 AI’가 바꾸는 물류의 미래를 함께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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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
"中 800조 투자에 대응, 한국은 기술 주권 확보해야"
물류·유통 산업은 이제 단순 자동화(Automation)에서 지능화(Intelligence)로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피지컬 AI(Physical AI)'가 있다. 피지컬 AI는 디지털 세계의 AI(예: ChatGPT)와 달리 물리적 환경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이 기술이 물류·유통 산업에 도입되면서 기존의 가치 사슬(Value Chain)과 비즈니스 모델이 재편되고 있다.
iM증권 고태봉 리서치본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피지컬 AI가 물류·유통 기업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과 전략적 대응 방안을 분석한다. 특히 중국과 미국의 상이한 접근법을 비교하고, 한국 기업이 취해야 할 틈새 전략(Niche Strategy)을 제시한다.
비즈니스 환경 분석: 피지컬 AI가 재편하는 물류·유통 산업의 가치 사슬
인지 기반 운영 모델(Cognitive Operating Model)의 등장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챗GPT를 사용하는 것은 디지털 세계의 AI입니다. 반면 로봇이 물건을 집어 올리고,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주행하는 것은 물리 세계의 AI죠."
고태봉 본부장의 이 말은 물류·유통 산업이 직면한 패러다임 전환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기존의 물류 자동화는 '프로그래밍된 확실성(Programmed Certainty)'에 기반했다. 바코드, 정확한 좌표, 표준화된 경로가 필요했고, 이러한 확실성이 깨지면 시스템도 작동을 멈췄다.
반면 피지컬 AI는 '학습된 적응성(Learned Adaptability)'을 기반으로 한다. 엔비디아의 '코스모스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이 대표적 사례다. 이 모델은 물리 법칙을 AI에 학습시켜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적응적 대응이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활용되는 기술로는 LAM(Large Action Model, 대규모 행동모델), LVM(Large Vision Model, 대규모 시각모델) 등이 있다. LAM은 로봇이나 자율주행 차량의 행동을 예측하고 설계하는 모델로, 복잡한 물류 환경 내 움직임의 최적 경로를 판단하고 실행하는 데 쓰이며, LVM은 카메라와 센서 기반으로 물리적 사물과 공간을 인식하는 시각 기반 AI로, 물체 분류·위치 인식·상황 판단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이러한 모델들의 융합은 물류센터, 항만, 도심 물류 등 다양한 공간에서 더 유연하고 인간 친화적인 시스템을 구현하는 핵심 요소다.
물류 현장의 경제성 방정식 재구성
피지컬 AI의 도입은 물류 운영의 경제성 방정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1. 자산 활용 효율성(Asset Utilization Efficiency) 향상
기존 물류 센터의 자동화 설비는 특정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어 환경 변화에 취약했다. 피지컬 AI는 다양한 환경과 작업에 적응할 수 있어 설비 활용도가 크게 향상된다.
2. 총소유비용(TCO, Total Cost of Ownership) 감소
"물류 센터에서 로봇에게 '저 빨간 상자를 옮겨라'라고 지시해 보세요. 기존 로봇은 정확한 좌표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피지컬 AI 로봇은 '빨간 상자'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스스로 찾아내 옮깁니다."
이는 환경 구조화 비용(Structuring Cost)의 대폭 감소를 의미한다. 전통적 자동화에서는 로봇이 작동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재구성하는 데 초기 투자의 40-60%가 소요되었다. 피지컬 AI는 이 비용을 크게 절감한다.
3. 운영 탄력성(Operational Resilience) 증대
피지컬 AI 시스템은 물체의 무게감, 표면 특성, 취약성 등을 이해하고 적응적으로 행동한다. 이는 다양한 상품 취급이 필요한 이커머스 물류에서 특히 중요한 경쟁 우위가 된다.
데이터 중심 협업 생태계(Data-Centric Collaborative Ecosystem)의 부상
물류·유통 산업은 "독점적 데이터"에서 "협업적 데이터"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개별 기업의 전략적 포지셔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테슬라가 180만 대의 차량에서 데이터를 수집할 때, 중국은 2,750만 대에서 데이터를 확보합니다. 이처럼 압도적인 규모의 데이터는 AI 경쟁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제공합니다."
이 현상은 물류·유통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데이터 네트워크 효과(Data Network Effect)가 작용하는 AI 시대에는 개별 기업의 고립된 데이터로는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 산업 생태계 차원의 데이터 공유 및 협업 모델 구축이 필수적이다.
실제 사례로는, WMS나 TMS 시스템의 SaaS(Software as a Service)형 구독 서비스 도입이 확산되고 있으며, 예를 들어 CJ대한통운은 배송 DB와 금융권 API를 결합해 소상공인 대상 운송 기반 금융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며, 삼성SDS와 현대글로비스는 제조-물류 통합 SCM에서 공통 데이터 포맷을 개발해 융합형 플랫폼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향후엔 이러한 ‘서비스형 물류 지능(LIaaS: Logistics Intelligence as a Service)’ 모델이 유통, 금융, 제조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도 물류 BPO 기업이나 IT 물류 플랫폼 기업들이 LIaaS 기반 솔루션을 고도화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경쟁 구도 분석: 상이한 전략적 접근
중국의 스케일 전략(Scale Strategy)
중국의 피지컬 AI 접근법은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에 기반한다. 2015년 1.5조 위안이던 R&D 예산은 2023년 3.3조 위안(약 640조 원, GDP의 2.64%)으로 증가했으며, 2024년에는 약 4조 위안(약 80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2030년까지의 투자 계획은 총 10조 위안(약 1,900조 원)에 달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동수서산(東數西算) 프로젝트: 컴퓨팅 인프라 집중화
"2022년부터 가동된 이 프로젝트는 8개의 국가 컴퓨팅 허브와 10개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포함하며, 연간 4,000억 위안(약 77조 원)이 투자되고 있습니다. 데이터 연산능력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동부 해안지역에서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를 서부 내륙의 대규모 컴퓨팅 센터로 전송해 처리하는 국가적 컴퓨팅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다.
2. 하드웨어 표준화 전략: 플랫폼 확산 가속화
"중국은 국가 주도로 유니트리(Unitree), 유비테크(UBTECH), 에지봇(Agibot) 등의 로봇 하드웨어를 표준화했습니다. 이는 '선 하드웨어 표준화, 후 AI 개발'이라는 전략적 접근입니다."
이 '폼팩터(Form Factor) 전략'을 통해 중국은 하드웨어 표준화로 데이터 통일성을 확보하고, 수백 개 연구기관이 동일 플랫폼에서 연구를 집중함으로써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혁신 전략(Innovation Strategy)
미국은 '규모'보다 '질적 우위'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추구한다.
1. Offset-X 전략: 안보와 산업의 융합
"미국의 SCSP(Special Competitive Studies Project)는 중국의 A2/AD(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해 무인화 중심의 봉쇄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Offset-X 전략의 본질입니다."
'레플리케이터(Replicator)' 프로그램은 이 전략의 구체적 실행 사례로, 소형화되고 지능화된 자율 시스템을 대량으로 배치하는 계획이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피규어의 Figure01, 엔비디아의 GR00T 등이 이 프로그램 하에서 개발되고 있다.
2. 구독 경제 모델(Subscription Economy): 새로운 수익화 패러다임
"테슬라는 완전 자율주행(FSD) 소프트웨어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미국 도로의 2억 6천만 대 차량에 연간 1만 달러의 자율주행 구독료를 적용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보다 더 거대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 접근법은 물류·유통 산업에도 적용 가능하다. 물류 자산(창고, 차량, 로봇)의 소유보다 지능형 운영 시스템을 구독 모델로 제공하는 '서비스형 물류 지능(Logistics Intelligence as a Service)' 모델이 부상할 수 있다.
한국 물류·유통 기업의 전략적 대응 프레임워크
집중 차별화 전략(Focused Differentiation Strategy)
한국은 글로벌 경쟁에서 '태릉선수촌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양궁, 쇼트트랙처럼 특정 영역에서 세계 최고의 성과를 거두어 왔습니다. 피지컬 AI 분야에서도 동일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집중 차별화 전략(Focused Differentiation Strategy)'에 해당한다. 전체 물류·유통 가치 사슬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특정 영역에 집중하는 접근법이다.
기술 주권 확보: 핵심 의사결정 통제력
'소버린 AI(Sovereign AI, 자국 독자 AI)'의 개념은 물류·유통 기업에게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한국은 디지털 전환에서는 세계 2위였지만, AI 전환 시대에는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는 기업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류·유통 기업은 전체 AI 스택을 자체 개발할 필요는 없지만, 핵심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관련된 AI 역량은 내재화해야 한다. 특히 LLM(대규모 언어모델)뿐 아니라 LAM(Large Action Model, 대규모 행동모델), LVM(Large Vision Model, 대규모 시각모델) 기술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물류·유통 기업의 3대 핵심 실행 과제
1. 데이터 협업 인프라 구축: 협력적 경쟁(Co-opetition) 모델
주요 과제:
● 물류·유통 산업 내 데이터 표준화 및 공유 플랫폼 구축
● 경쟁사 간 비경쟁 영역(Non-competitive Area)에서의 데이터 협업 체계 수립
● 데이터 품질 관리 및 거버넌스 체계 확립
기대 효과:
● 데이터 네트워크 효과 극대화
● AI 모델 개발 및 학습 효율성 향상
● 중국의 데이터 규모 우위에 대한 전략적 대응
2. 의사결정 주권 확보: 핵심 역량의 선택과 집중
주요 과제:
● 물류·유통 가치 사슬 내 핵심 의사결정 영역 식별 및 우선순위화
● 자체 개발과 외부 도입의 균형 있는 포트폴리오 구성
● 물류 현장 특화 AI 인재 확보 및 육성 프로그램 개발
기대 효과:
● 기술 종속성 리스크 감소
● 차별화된 고객 경험 및 서비스 경쟁력 확보
● 지속적 혁신 역량 강화
3. 신뢰 기반 생태계 구축: 윤리적 AI 운영 체계
주요 과제:
● 물류·유통 특화 AI 윤리 원칙 및 지침 수립
● 알고리즘 투명성 및 설명 가능성 확보
● 개인정보 보호 및 보안 체계 강화
기대 효과:
● 고객 및 파트너사와의 신뢰 관계 강화
● 규제 리스크 선제적 대응
● 브랜드 가치 향상 및 시장 차별화
물류·유통 산업의 전략적 변곡점
피지컬 AI는 물류·유통 산업에서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비즈니스 모델과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게임 체인저다. "현재는 '자동화 1.0'에서 '지능화 1.0'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변곡점입니다. 단순한 작업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경영자와 기획자의 근본적인 사고방식까지 혁신해야 할 시점입니다."
물류·유통 기업들은 이제 자원 기반 관점(Resource-Based View)에서 역량을 재평가하고, 새로운 생태계 내에서의 포지셔닝을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물류는 산업의 혈관이자 신경망입니다. 이 핵심 신경망의 통제권을 누가 확보하느냐에 따라, 국가 경쟁력이 근본적으로 결정됩니다."
한국 물류·유통 기업들은 세계적 수준의 제조 기반, 첨단 IT 인프라, 효율적 물류 노하우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피지컬 AI 시대에 새로운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이 기회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비전과 체계적인 실행 전략이 필요하다.
물류·유통 산업의 리더들은 이제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당신의 기업은 피지컬 AI 시대에 단순한 기술 도입자(Technology Adopter)가 될 것인가, 아니면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인가?"

who?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자동차 및 미래 모빌리티 산업 분야에서 20년 넘게 애널리스트로 활동해왔다. 하이투자증권과 IBK투자증권을 거쳐 현재 iM증권(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을 맡고 있으며, '테크노믹스 시대의 부의 지도' 저자이자, 정부 주요 부처와 산업계에서 미래 기술 전략 자문 및 강연을 활발히 수행 중이다. CES, 로보틱스, 블록체인, UAM 등 첨단 산업에 대한 인사이트 보고서로도 잘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