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창고에 보관된 '국가 기억'의 경제학
입양기록물 논란이 드러낸 공공 인프라 투자의 맹점
2025년 7월, 경기도 고양시 외곽 물류창고 4층에 입양기록물 26만 건이 이관되면서 예상치 못한 논란이 일었다. '왜 냉동창고에 보관하느냐'는 비판부터 접근성과 보존 환경에 대한 우려까지, 표면적으로는 인도적 관점의 문제제기로 보였다. 하지만 이 사건을 경제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공공 인프라 투자의 구조적 문제와 효율성 논리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산 제약이 만든 차선책의 경제학
문제의 시작은 예산이었다. 정부는 2023년 입양기록관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에서 340억 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지만, 기획재정부 예산 심의 과정에서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확보된 23억 원으로 해결해야 했고, 법정 하중 기준을 충족한 민간 물류창고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이는 전형적인 '예산 제약하 차선 선택(second-best solution)' 사례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최적해가 불가능할 때 차선해를 선택하는 상황이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기 비용 절감이 장기적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가능성이다.
현재 임시 보존소 운영비용을 연간 약 5억 원으로 추산할 때, 5년간 총 25억 원이 소요된다. 23억 원 초기 투자에 25억 원 운영비를 더하면 48억 원. 340억 원 대비 약 14%에 불과하지만, 이는 단순 비용 비교일 뿐이다.
숨겨진 사회적 비용의 계산
경제학에서 진정한 비용은 기회비용과 외부효과를 포함한다. 입양기록물의 경우, 접근성 제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상당하다.
먼저 접근 비용의 증가다. 고양시 외곽 위치로 인해 해외입양인들의 평균 접근 비용은 최소 5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추산된다(항공료, 숙박비, 교통비 포함). 연간 약 1,000명의 해외입양인이 기록에 접근한다고 가정하면, 추가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만 연간 5억 원에 달한다.
신뢰 비용도 간과할 수 없다. 부적절한 보관 환경에 대한 우려는 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이는 정부 정책 전반의 효과성을 저하시킨다. 행동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한 번 손상된 제도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드는 비용은 초기 적정 투자 비용의 3-5배에 달한다.
기록 보존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이번 사건은 공공서비스 제공 방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기록 보존을 단순한 '보관업'이 아닌 '정보 물류업'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물류업계의 핵심은 '창고'가 아니라 '흐름'이다. 아마존의 성공 비결도 단순한 재고 관리가 아니라 주문부터 배송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최적화한 데 있다. 마찬가지로 기록 보존도 이관→분류→보존→디지털화→열람→활용의 전 과정을 통합 설계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접근법은 '창고 중심'의 구시대적 발상이다. 필요한 것은 '기록 물류 허브(Records Logistics Hub)' 개념이다. 물리적 보관은 외곽 저비용 지역에서 담당하되, 디지털화와 고객 접점은 도심 접근성이 좋은 곳에 배치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효율적이다.
공공 인프라 투자의 새로운 기준
이번 사건은 공공 인프라 투자 평가 기준의 개선 필요성도 시사한다. 현재 예비타당성조사는 주로 B/C(비용편익) 분석에 의존하지만, 기록물처럼 사회적 가치가 큰 분야에서는 한계가 있다.
옵션 가치(option value)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입양기록물의 경우, 당장 활용하지 않더라도 미래에 접근할 수 있다는 권리 자체가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또한 네트워크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기록 보존 시스템이 잘 구축되면 의료기록, 교육기록 등 다른 분야 기록 관리에도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예컨대 미국 보건기록 시스템은 네트워크 효과 기반으로 연 30억 달러 이상의 간접편익을 창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리스크 프리미엄을 반영해야 한다. 부실한 보관으로 인한 기록 손실은 돈으로 보상할 수 없는 피해다. 이런 회복 불가능한 손실 리스크를 고려하면, 초기 투자비가 다소 높더라도 안전한 시설에 투자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다.
민관협력의 새로운 가능성
흥미롭게도, 이번 사건은 민관협력(PPP)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정부가 직접 기록관을 건립하는 대신, 민간 물류업체의 인프라를 활용하되 공공서비스 요구사항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이다.
이는 특히 데이터센터나 클라우드 서비스 분야에서 활용되는 모델과 유사하다. 민간의 효율성과 공공의 안정성을 결합할 수 있다면, 340억 원 대신 100억 원 내외로도 충분한 서비스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서비스 수준 협약(SLA)과 성과 지표가 필요하다. 단순히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면서도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경제성과 공공성의 균형
냉동창고 논란은 경제성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공공서비스 제공 방식의 혁신을 모색할 수 있다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 비용 절감에만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사회적 편익을 고려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공급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수요자 경험을 중심으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국가의 기억을 보존하는 일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그리고 그 투자의 진정한 수익률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융상품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창출되는 사회적 가치로 측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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