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를 안다고, 물류 사업을 잘하는 건 아니다"
‘은밀하게 단단하게’ 성장한 중견 물류기업 운창로지텍 최광열 대표를 만나다
“물류를 잘 안다고, 물류 사업을 잘하는 건 아니지요.”
운창로지텍 최광열 대표가 조용히 건넨 이 한마디는, 그가 걸어온 20년을 압축한 문장이었다.
신선식품 배송부터 가전 설치, 공공급식, e커머스 3PL까지. 운창로지텍은 연 매출 600억 원, 보유 차량 1,000대, 전국 거점 37곳을 갖춘 중견 종합물류기업이다. 그러나 이 회사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표의 얼굴도, 인터뷰도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일부러 그랬다.
“물류는 조용히 할수록 오래갑니다. 소문이 나면 견제가 시작되거든요.”
최 대표는 그렇게 말한다. 물량은 키우되 존재감은 숨기고, 관계는 넓히되 노출은 피하는 경영 전략. 그는 스스로 이 방식을 ‘스텔스 경영’이라 부른다.
기아차 채권부서에서 물류창업까지
그의 시작은 냉혹했다. 군 장교 전역 후,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부실채권을 회수하는 업무를 맡았다. 매일같이 부도 직전의 물류업체들을 상대하면서, 그는 시장의 이면을 보게 됐다.
“트럭도 있고 기사도 있는데, 회사를 못 돌리는 구조가 이상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이걸 남의 일로만 볼 게 아니구나.”
거래처 대신 직접 배송을 맡았고, 채무자의 신뢰 대신 자기 이름으로 계약을 땄다. 생존을 위해 뛰어든 물류 현장에서, 사업의 씨앗이 움텄다. 그렇게 탄생한 운창로지텍은 올해로 창업 21년 차를 맞았고,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매출은 성장했다. 평균 성장률은 16%.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자랑’이라 말하지 않는다. “살아남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 판에 담지 않는 이유’, 여섯 개의 회사
운창로지텍은 하나의 회사가 아니다. 법인 수만 여섯 개다. 조직 관리 효율성, 리스크 분산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대기업과 일하다 보면, 매출이 커지는 순간부터 경계가 들어와요.
그래서 우리는 회사를 나눴어요. 계약도, 운영도. 일부러요.”
롯데마트, 마켓컬리, 오늘의집 등 고객사에 따라 별도 법인을 배치하고, 센터도 각 법인별로 분산 운영한다. 그는 덩치를 키우기보다 덩치를 나누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드러나지 않고, 그러나 빠르게. 이 전략은 지금까지 유효했다.
물동량 중심에서 자산 중심으로
최근 그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사업 구조의 대전환이다. 과거 물동량 기반의 위탁 운영에서, 자산 기반의 직접 운영으로 중심축을 옮기는 중이다.
“물동량은 빠져나갈 수 있지만, 자산은 남잖아요.
우리가 담을 ‘그릇’을 키우는 일이 먼저예요.”
그는 센터를 임차에서 자가로 전환하고, 차량은 외주에서 지입·직영 렌탈로 돌렸다. 보험은 외부 손해보험이 아닌 자체 공제회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정비는 외부 협력망을 활용하되, 차량별 이력 관리를 통해 효율을 높였다.
성과는 구체적이다.
-. 직영 렌탈 차량 500여 대에서 월 1억 원 이상 렌탈 마진을 확보하고,
-. 공제회 보험 운영을 통해 연간 3~5억 원의 리스크 비용을 절감하며,
-. 차량 운영 이력 관리 시스템을 통해 차량당 월 운영비 12~15% 절감에 성공했다.
이 구조는 운송 수수료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중소 물류업계 현실에서, 운창로지텍이 독자적인 생존 모델을 만들어낸 핵심이다. 그는 이 방식을 “간접 이익 극대화 모델”이라 부른다.
“택배 회사들은 운송 단가만 보고 싸움하는데, 우리는 차량, 보험, 센터에서 따로 수익이 나요.
하나가 빠져도 회사는 안 무너지는 구조예요.”
본부장은 나갔고, 창고는 내가 지었다
“사람을 믿었다가 당한 적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은 대부분 직접 봅니다.”
최 대표는 현장을 직접 통제하는 걸 기본으로 한다. 영업사원을 두기도 했고, 본부장에게 회사를 맡긴 적도 있지만, 결국 그들이 회사를 떠날 때 그는 혼자가 됐다. 그래서 그는 대부분의 계약을 지금도 직접 관리한다.
그는 창고를 10번 넘게 직접 지었다고 한다. 부동산 업자보다 창고를 더 잘 안다고 말한다. 사람을 보는 눈, 땅을 고르는 눈, 물동량을 예측하는 눈. 그에겐 이 모든 것이 데이터가 아니라 감각이다.
“사업은 논리보다 감각이 이겨요. 때론 생까야 이깁니다.
말이 안 통해야 이길 때도 있어요. 이 바닥은 그런 겁니다.”
이 말은 거칠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진짜 언어다. 그에겐 이론이 없지만, 경험이 있다. 책은 없지만, 감각은 있다.
다음 세대에 넘겨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다
그는 요즘 막내아들과 회사를 함께 하고 있다. 요리 전공을 한 30대 청년이지만, 그는 대표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30이면, 회사 하나쯤 맡아야지.” 그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가 아들에게 넘기려는 건 단순한 직책이 아니다. 사업의 감각, 운영의 구조, 사람의 시선. 그것을 체화시키기 위해 그는 현장 실습부터 시작하게 했다.
“기술은 배우면 되죠. 감각은 살아봐야 압니다.
나는 그걸 알려주고 싶어요.”
사람으로 일했고, 사람을 지켰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자랑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만 했다. 그 대신 여러 번 강조한 말은 이것이었다.
“나는 잘난 게 없어요. 다만 약속은 지키려고 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어요.”
물류는 약속의 산업이다. 시간과 장소, 고객과 계약,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를 정확히 지켜야 한다. 그 신뢰를 20년간 어기지 않은 사람, 그것이 바로 최 대표다.
그는 묻는다.
“물류는 사람으로 시작하는데, 왜 사람을 잃고 끝날까요?”
그 질문은 이 업에 오래 몸담은 사람만이 던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경영자의 언어다.
Who is?
‘숨기며 키운 물류 20년’. 간접 이익 구조로 중견기업을 만든 스텔스 경영자, 최광열 운창로지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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