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sight Stream
  • BX Premium
  • Node Point
  • Global Nexus
  • what's X
  • 로그인

물류가 공간을 삼키고 있다. '동선'에서 '흐름'으로

김철민
김철민
- 8분 걸림
연재: 물류·공간·일상의 재편을 말하다(제1화)

얼마 전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배달앱으로 주문한 치킨이 건물 1층 로비에서 배송 로봇에게 전달되고, 이 로봇이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현관 앞에 도착한다. 그런데 같은 건물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온 다른 배달 기사는 지하 화물용 승강기만 이용하라는 제약을 받는다.

같은 공간, 다른 대우.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단면이다.

■ 535% 성장한 배달 시장, 18% 증가한 쓰레기

숫자로 보면 변화의 규모가 더 명확해진다. 2020년 음식서비스 온라인 거래액은 전년 대비 535% 증가한 17조 3,371억원을 기록했다. 그 결과 재활용 쓰레기는 18.1%, 플라스틱류는 9.1% 늘어났다.

흥미로운 건 2022년 이후 배달 시장이 조정국면에 들어섰음에도 물류 중심의 공간 재편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팬데믹 특수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경기 고양시 힐스테이트 라피아노 삼송에서는 자율주행 로봇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택배를 배달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었다. 현대건설이 도입한 이 시스템은 건설업계가 왜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 세 장의 지도로 보는 도시 재편

도시 계획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세 장의 지도'다.

첫 번째는 인구밀도 지도다. 전통적인 도시 계획의 기준으로, 사람이 많은 곳에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새벽배송 권역 지도다. 물류 거점에서 효율적인 배송이 가능한 지역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배송 사각지대 지도다. 사람은 살지만 배송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이 세 지도를 겹쳐보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도시 설계의 기준이 '거주 가능성'에서 '배송 가능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 플랫폼이 공간을 재정의하다

배민B마트가 2024년 첫 흑자를 달성한 배경에는 공간 전략의 변화가 있다. 초기 신축 상가 중심의 다크스토어에서 시작해, 이제는 물류 효율을 우선으로 상권 전체를 재설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쿠팡은 도시 외곽 물류센터와 도심 라스트마일 거점을 결합한 투트랙 전략을 구사한다. 이들에게 공간은 '제어 가능한 네트워크 단위'다. 도시 평면도는 점차 물류 동선과 데이터 흐름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

정부도 이런 변화를 수용하고 있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스마트시티 로드맵에서 '생활물류 거점 확보'를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세종시와 김포시 등 신도시는 아예 설계 단계부터 물류 인프라를 기본값으로 삼고 있다.

■ 효율성의 그늘, 새로운 불평등

하지만 이런 변화가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지는 않는다. 물류 최적화 도시의 수혜자는 명확하다. 경제적 여력이 있고, 신축 아파트나 접근성 좋은 지역에 거주하며, 디지털 플랫폼 활용이 가능한 계층이다.

반면 배송 사각지대 거주자, 디지털 소외계층, 배송비 부담이 큰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공간 재편이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 두 가지 미래 시나리오

현재 진행되는 변화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첫 번째는 '플랫폼 중심 도시'다. 엘리베이터는 AI가 상품과 사람의 흐름을 동시에 제어하고, 주민 동선보다 상품 흐름이 우선되는 공간이다. 배송 스케줄에 맞춰 조정되는 일상 리듬이 일반화된다.

두 번째는 '인간-물류 공존 도시'다. 물류 효율성과 거주 환경의 질이 균형을 이루고, 배송 시설이 커뮤니티 공간과 결합된 복합 시설이 확산된다. 시민 참여를 통한 지속적인 공간 개선이 이뤄진다.

■ 질문하는 시민이 되어야 할 때

건축가에서 플랫폼으로, 거주 가능성에서 배송 가능성으로. 도시 설계의 주체와 기준이 바뀌고 있다. 이 변화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을 조정할 수는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이 있다. 누구를 위한 효율인가? 배제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공간의 주인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편의와 인간다움 사이의 균형점은 어디인가?

서울 중구가 계획 중인 로봇 주행 테스트베드 연계 복합물류 거점, 세종시의 배송-쓰레기 처리 통합 시스템, 김포시의 물류-보행 동선 입체 분리 방안 등은 희망적인 시도들이다.

물류가 공간을 삼키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떤 도시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 결정에 우리도 참여해야 한다.


[연재 순서] 물류·공간·일상의 재편을 말하다

프롤로그 「아마존이 우리 동네에 아파트를 설계하기 전에」

″아마존이 우리 동네 아파트를 설계하기 전에”
연재: 물류·공간·일상의 재편을 말하다(프롤로그)”배달앱과 쿠팡이 바꾸는 건 도시가 아니라 ‘도시 생활‘이다.” 도시는 건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동’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지금, 그 이동을 설계하는 주체는 더 이상 건축가나 도시계획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번 『아마존이 우리 동네를 설계한다면』연재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쿠팡이 새벽배송을 시작한 지 벌써 몇

제1화 「물류가 공간을 삼키고 있다: '동선'에서 '흐름'으로」

제2화 「"도시의 설계자가 바뀌고 있다" 건설사는 플랫폼으로」

제3화 「"건설사는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가" 플랫폼 도시의 카운터파트로」


💡
STREAMLINE은 핵심 전략을 간추린 백브리핑입니다. 실무 전략 수립과 실행 가이드가 필요하시다면, BEYONDX 리포트 전문판(유료 콘텐츠)을 확인해보세요. 시나리오별 리스크 분석, 수요 예측 기반 통합 로드맵, 공급망 시뮬레이션을 모두 제공합니다. 지금 BX 프리미엄에서 자세히 살펴보세요.
도시 공간과 삶을 재편하는 기술의 힘
💡[저작권 안내] 본 보고서의 저작권은 비욘드엑스에 있습니다. 사전 서면 동의 없이 본 보고서의 내용을 무단으로 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 및 방송하는 행위를 금합니다. 자료 문의:ceo@beyondx.ai

© 2025 BEYONDX. All rights reserved. This is part of the STREAMLINE: Beyond Logistics Playbook by BEYONDX series.

도심물류아파트 단지 배송택배음식배달도시계획물류다크스토어스마트시티배달의민족쿠팡오아시스로봇배송물류 최적화Node Point

김철민

『네카쿠배경제학』의 저자이자, 유통 물류 지식 채널 비욘드엑스 대표입니다.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이 물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공급망의 진화 과정과 그 역할을 분석하는 데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으로서 국가 물류 혁신 정책 수립에 기여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