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없는 커머스 성장, 과연 지속가능한가
네이버 2Q 실적으로 본 이해진의 '생태계 경영'
네이버가 2025년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 2조 9,151억 원(+11.7% YoY), 영업이익 5,216억 원(+10.3%), 당기순이익 4,974억 원(+49.8%)이라는 수치 자체도 양호하지만, 진짜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커머스 부문이 +19.8%로 전체 성장을 견인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건 네이버가 아마존이나 쿠팡처럼 수조 원을 물류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으면서도 이런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설계한 이 '생태계 경영' 모델을 해부해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시사점들이 보인다.
■ 커머스가 성장 엔진이 된 이유
사업부문별 성장률을 살펴보면 커머스(+19.8%)가 압도적 1위다. 콘텐츠(+12.8%), 핀테크(+11.7%), 서치플랫폼(+5.9%), 엔터프라이즈(+5.8%)를 모두 앞선다. 더 중요한 건 내부 구조다. 커머스 광고 +19.8%, 중개 및 판매 +19.6%, 멤버십 +20.7%로 모든 하위 부문이 고르게 20% 가까이 성장했다.
이런 '고른 성장'은 보통 구조적 변화의 신호다. 특정 프로모션이나 마케팅 효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네이버는 무엇을 다르게 했을까?
핵심은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앱의 성공적 안착이다. 이 앱은 전체 페이지뷰와 거래액 성장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스마트스토어 및 크림 거래액 성장에 힘입어 온플랫폼 거래액은 YoY 9.0% 증가했다.
여기서 이해진의 전략적 선택이 드러난다. 쿠팡이 수조 원을 들여 풀필먼트 센터를 짓고 로켓배송을 만든 것과 달리, 네이버는 물류 인프라 경쟁을 아예 피했다. 대신 '앱 내 쇼핑 경험' 최적화에 모든 것을 걸었다.
■ 핀테크가 커머스의 비밀병기인 이유
핀테크 부문 성장률 +11.7%만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결제액 20.8조 원(YoY 18.7% 증가)이라는 거래 규모는 놀랍다. 특히 외부 결제액이 YoY 27.1% 성장해 11.2조 원을 기록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해진의 '뇌'에서 핀테크는 단순 결제 수단이 아니다. 결제 패턴 → 쇼핑 취향 분석 → 상품 추천 → 광고 타겟팅으로 이어지는 데이터 순환 구조의 시작점이다. 스마트스토어 성장과 외부 생태계 확장이 핀테크 성장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커머스 광고 효율 개선으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작동하고 있다.
네이버페이로 A상품을 구매하면, 구매 패턴이 쇼핑 알고리즘에 학습되고, 관련 상품이 검색 결과에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판매자는 더 효율적인 광고를 집행할 수 있고, 네이버는 광고 매출과 중개 수수료를 동시에 늘릴 수 있다. 이게 바로 '생태계'의 힘이다.
■ '자산 경량화' 전략의 지속가능성
아마존은 창고에, 쿠팡은 풀필먼트 센터에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이해진은 물류 인프라 투자를 최소화하면서도 커머스 +19.8% 성장을 달성했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
비결은 '플랫폼 중개' 모델의 극대화다. 창고를 짓는 대신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들의 상품 노출을 최적화하고, 배송망을 구축하는 대신 기존 택배사·물류업체와의 연동을 강화했다. 마케팅비가 YoY 31.5% 증가한 것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이다. 물리적 자산 대신 브랜드 인지도와 사용자 유입에 투자해서,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를 플랫폼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배송 품질이나 속도에서 쿠팡 대비 불리할 텐데, 어떻게 경쟁하는 걸까? 이해진의 답은 간단하다. "배송 속도로 경쟁하지 말고, 발견 경험으로 경쟁하자."
■ 광고가 아닌 '발견 경험' 설계
전체 네이버 플랫폼 광고가 YoY 8.7% 성장했지만, 더 중요한 건 커머스 광고가 상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온라인 광고의 문제점은 명확했다. 사용자는 광고를 '방해'로 인식하고, 광고 차단기 사용률은 지속 증가하며, 광고 피로감으로 클릭률은 하락했다. 그런데 네이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답은 '광고 = 방해'라는 기존 관념을 뒤집는 것이었다. 사용자가 "여름 원피스"를 검색하면 검색 결과와 관련 쇼핑 상품이 함께 노출된다. 사용자는 정보와 구매 옵션을 동시에 얻고, 자연스러운 쇼핑 전환이 발생한다.
이는 메타, 구글의 타겟 광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외부 데이터로 추정한 관심사가 아니라, 네이버 플랫폼 내에서 실제로 검색하고 구매한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훨씬 높다.
■ AI는 혁신 도구가 아닌 최적화 도구
AI 기술 및 광고 컨설팅 역량을 기반으로 광고 효율이 증대되고 있지만, 이해진의 AI 전략을 자세히 보면 많은 기업들과 다른 접근법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AI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만들자"고 하지만, 이해진의 접근은 "AI로 기존 경험을 더 매끄럽게 만들자"는 것이다.
첫째, 네이버는 이미 검색-커머스-결제로 이어지는 검증된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AI를 무리하게 끼워넣어 기존 구조를 흔들 이유가 없다.
둘째, 사용자 행동 변화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다. 네이버가 보유한 다양한 콘텐츠와 데이터에 AI가 접목되며 모바일 메인 체류시간과 검색 세션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점진적 개선의 결과다.
셋째, ROI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AI 투자가 단기적 화제성이 아닌, 운영 효율성과 사용자 만족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 생태계 경쟁 시대의 시사점
2025년 8월 현재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약 52조 원이다. 커머스 부문만 놓고 보면 쿠팡(약 50조 원)과 비슷한 밸류에이션을 받고 있지만, 투자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쿠팡은 물류 인프라에 수조 원을 투자해 커머스 성장을 달성했지만, 네이버는 플랫폼 생태계 투자만으로 물류 자산 없이 커머스 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중요한 패러다임 변화를 시사한다. 앞으로는 창고·배송망 같은 단일 영역의 우위만으론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검색·결제·콘텐츠·광고가 연결된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이 승부를 가를 것이다.
물리적 인프라보다는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반의 경량화된 비즈니스 모델이 더 높은 가치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고, 단순히 '빨리 배송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부터 구매, 재구매까지의 전체 여정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 설계된 우연의 힘
네이버의 이번 실적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결과물이다. 수십 년 동안 검색·결제·콘텐츠라는 서로 다른 재료를 쌓아 올려, 커머스라는 '결정적인 연결고리'로 하나의 생태계를 완성한 장인의 작업 같다.
이해진의 생태계 경영 모델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기술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되는 게 아니라, 기존 사업과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 연결의 완성도가 바로 지속가능한 성장의 비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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