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에서 벌어지는 ‘주차장+자전거’ 도심물류 실험
지금 경상북도 김천시에서는 흥미로운 물류 실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공용주차장 유휴 부지를 활용한 물류 사업인데요. 지난 9월 5일 경북 김천시 율곡동에 위치한 공용주차장 부지에 ‘생활물류복합센터’가 준공됐고요. 이 물류센터를 활용하여 도심형 생활물류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화물용 전기자전거를 배송수단으로 활용하는 사업도 시작됐습니다. 율곡동 생활물류복합센터는 일반적인 1톤 택배차량뿐만 아니라, 전기자전거를 배송수단으로 연계하는 특성이 있는데요. 향후 김천시 지역 주민을 배송인으로 활용한 크라우드소싱(Crowd Sourcing) 기반 배송 플랫폼을 실증한다는 계획입니다.
두 가지 물류 사업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021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한 ‘경북 스마트그린물류 규제자유특구’에서 검증됩니다. ‘규제자유특구’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두 실증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유예 또는 면제받는 ‘규제 샌드박스’ 환경을 기반으로 사업이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예컨대 현행법상 주차장의 부대시설 설치 면적은 총 시설 면적의 20%(조례 제정시 40%)를 넘어갈 수 없는데요. 이번에 김천시 율곡동 주차장 부지에 준공된 생활물류복합센터는 이 규정을 완화함으로 기존 주차장의 주차 면수를 유지하면서 물류센터 공간이 부지에 들어설 수 있었고요. 마찬가지로 현행법상 안전 기준 부재로 삼륜 전기자전거의 자전거 도로 주행은 제한되는데요. 특구 내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제시하는 안전 기준을 준수한다는 부대조건 하에 삼륜형 전기자전거의 자전거 도로 주행이 허용됐습니다.
김천에서 벌어지는 도심물류 실험은 앞으로 전국 지자체로 확산될 수 있는 새로운 물류 모델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이번 사업 실증을 통해 아파트 택배차량 진입 불가로 인한 택배 갈등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고요. 이 외에도 지역 일자리 창출, 화물 전기자전거 산업 성장 등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고 전했는데요. 실증 기간 동안 사업 효율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동안 사업 확산을 막았던 법령 개정의 근거가 마련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김천을 넘어 전국으로 주차장을 활용한 물류센터 운영 모델과 화물 전기자전거 배송 모델이 확산될 수 있겠죠.
다만 한 편에서는 택배 갈등 지역 문제 해소나 친환경 배송 수단 활용과 같은 사회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경제성’까지 갖춰야만 민간까지 해당 물류 모델이 확산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이에 커넥터스는 율곡동 생활물류복합센터를 바탕으로 두 가지 물류 모델을 운영하는 기업인 PLZ의 박순호 대표를 만났고요. 이번 물류사업 실증의 사회적, 경제적인 의미와 함께 향후 계획까지 청해들었습니다.
주차장을 ‘물류’ 용도로 쓰는 법
사실 주차장을 물류 용도로 사용하는 실험은 예전부터도 왕왕 있었습니다. 도심 물류 거점은 항상 부족했고, 이를 주차장 유휴 부지를 활용한다면 해결할 수 있지 않겠냐는 구상이었는데요. 실제로 여러 물류기업들이 관련된 물류 사업을 현실 속에 구현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애초에 물류 용도로 설계되지 않은 주차장이기에 생기는 문제점들은 있었습니다. 주차장은 화물차 진입이나 상하차, 분류 등 물류 작업을 하는데 기존 물류시설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고요. 물류 작업 효율화를 위한 자동화 설비를 운영하는 데도 제약이 있었습니다. 주차장을 물류 용도로 이용함에 따라, 주차 용도로 이용하는 고객들의 민원 이슈도 왕왕 발생하곤 했고요.
PLZ는 처음부터 이를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을 물류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존 주차장을 주차 목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이 생기면 안 된다고 봤고요. 그렇기에 율곡동 생활물류복합센터는 물류 작업을 하는 공간과 주차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는 형태로 설계됐습니다. 아예 주차장 부지에 물류 용도로만 활용되는 ‘물류센터’를 지어버리는 방식으로 말이죠.
다만, 이렇게 물류센터를 준공할 경우에는 기존 주차장의 주차 가능 면적을 희생할 수밖에 없잖아요? 여기서 율곡동 생활물류복합센터의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율곡동 생활물류복합센터는 물류센터 지붕까지 오르는 별도의 차량 진입로를 만들었고요. 이 지붕을 주차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기존 율곡동 주차장의 주차 면적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요컨대 율곡동 생활물류복합센터는 주차장 유휴 부지를 사용했다 뿐이지 기존 물류센터와 동일한 역할을 합니다. 2531제곱미터(약 766평) 규모의 물류센터 안에는 상품 자동 분류를 위한 크로스벨트 소터가 들어섰고요. 물류센터 상부에는 300평 정도의 보관 창고로 이용할 수 있도록 미니로드를 바탕으로 한 AS/RS(Automated Storage and Retrieval System)뿐만 아니라 DAS(Digital Assorting System), DPS(Digital Picking System) 설비가 들어섰습니다.
PLZ에 따르면 율곡동 생활물류복합센터는 FC(Fulfillment Center)이자 TC(Transfer Center)로 활용됩니다. 물류센터 상부에는 재고를 보관하여 곧바로 고객 주문에 대응한 출고 작업을 하는 식으로 대응하고요. 물류센터 1층 공간은 김천 지역 소상공인을 포함한 다양한 화주사들의 상품을 한데모아 분류하여 출고시키는 크로스도킹 물류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 생활물류복합센터는 지역 단위로 ‘허브앤스포크’를 구현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서로 다른 출발지에서 개별적으로 고객에게 배송하는 ‘포인트투포인트’ 방식과 비교하여, 권역별 배송지 밀도를 촘촘히 만들어서 물류 효율을 끌어올렸다는 것이 PLZ측 설명입니다. PLZ의 R&D 실증 결과에 따르면 중간 분류거점을 활용할 경우 포인트투포인트 방식 대비 차량 배송거리는 71.24%, 배송시간은 58.43% 감소하는 효율을 증명했다고요.
“저희는 사업을 본격화하기 이전 여러 물류학계 전문가와 협력하여 도심 외곽에서 직접 목적지까지 배송을 진행하는 경우와 중간에 도심 거점을 활용하는 경우를 분리하여 시나리오를 짜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도심 거점이 존재할 경우 이동거리와 시간 모두를 감소시키고, 비용절감과 서비스 강화 모두를 만들 수 있다는 결과를 입증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중간 거점을 풀필먼트와 라스트마일 배송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아 ‘브릿지마일’이라 부르는데요. 향후에는 브릿지마일 네트워크 구성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물류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 박순호 PLZ 대표
‘자전거’ 물류의 효용을 찾아서
자전거 물류의 공공사업 측면의 효용은 일견 명확해 보입니다. 대표적인 생활물류 배송수단인 1톤 택배차는 내연기관 차량으로 도심지내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 및 타이어 분진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고요. 일부 신도시 공원형 아파트단지가 안전 문제로 택배차량의 출입을 금지하면서, 택배기사들이 화물을 단지 문 앞에 쌓아놓는 등 택배 갈등 문제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만약 자전거를 물류 용도로 활용한다면 이런 문제들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어 보이기도 하죠.
한편,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 주요 선진국 도시들은 도심 지역 화물차 통행 규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ESG 이슈가 확산되면서, 환경 측면에 기여하고자 하는 물류기업들의 친환경 물류수단 활용 실험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심지에 공동 배송거점을 두고, 소비자 문전까지 라스트마일 배송은 화물 자전거, 핸드카트를 비롯한 친환경 배송수단을 활용하는 형태입니다.
다만, 여기서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있다면 물류 측면의 효율일 것입니다. 내연기관 화물차를 대체할 만큼, 자전거 물류가 충분한 운영 효율을 낼 수 있느냐는 것이죠. 단적인 예로 추가적인 전기 동력원을 활용하더라도, 화물과 사람의 무게까지 감당하여 자전거로 높은 언덕을 올라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PLZ 역시 이러한 제약 사항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PLZ는사람 무게와 화물 무게까지 감당할 수 있는 ‘화물용 전기자전거’ 개발을 위해 e모빌리티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설계하는 기업 ‘에코브’와 협력했습니다.
이 자전거에는 1톤 화물차에 적재되는 물량의 1/4 정도를 실을 수 있는 ‘롤테이너’ 단위의 화물 적재가 가능한데요. 삼륜 구동 구조를 택하면서 안정성을 높였으며, 시속 20~30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습니다.
율곡동 생활물류복합센터에서 출고되는 모든 상품을 ‘자전거’로 배송하는 것도 아닙니다. 당연히 전국 간선 배송은 기존 ‘택배망’의 도움을 받고요. 자전거가 배송수단으로 활용되는 지점은 대단지 아파트 중심으로 배송권역별 밀도가 높고, 이동거리가 최소화되는 지역을 추려서 선정했다고 합니다. 라우팅(Routing) 단계부터 전기자전거가 투입 가능한 지역을 고려하여 배차를 진행하고, 전기자전거 투입에 있어서 효율을 내기 어려운 지역은 기존 내연기관 화물차 운영을 병행하는 식으로 현실적인 물류 운영 효율 저하를 예방했다는 설명입니다.
현재 율곡동 생활물류복합센터에는 8대의 화물용 전기자전거가 배치됐습니다. 배송인으로는 배송권역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지역 거주민을 선정하는데요. 특히 경력단절 여성이나 노인들을 배송인으로 적극 유입하여, 지역 고용창출이라는 사회적인 가치 또한 챙겨 나간다는 계획입니다.
“PLZ는 과거 롯데마트 배송 업무를 대행하면서, 일반인을 충분히 배송인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저희는 동네 권역 안에 도심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미 권역별 지리를 숙지하고 있는 지역 분들을 배송인으로 모으는 데 유리합니다. 택배차량이 가기에는 효율이 나기 애매한 지역에 한해 전기자전거를 투입할 계획이며, 장차 권역별 효율이 고도화된다면 전기자전거를 통한 화물 건당 배송비용 역시 택배비 수준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박순호 PLZ 대표
‘지속가능성’ 검증을 위한 한 걸음
앞으로 김천시 생활물류복합센터가 지속가능한 효율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분한 ‘물량’이 필요합니다. 이에 물류사업 실증을 담당하는 PLZ는 현재 물량 영업에 무엇보다 매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건강기능식품을 다루는 한 화주사의 물량이 율곡동 물류센터에 재고로 보관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고요. 이 외에도 세탁물 수거 및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과도 협력하여 세탁 물류 서비스를 화물용 전기자전거를 기반으로 제공하는 테스트를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경북 스마트그린물류 규제자유특구 협력 민간 사업자로는 ‘쿠팡’도 참가하고 있는데요. PLZ에 따르면 국내 커머스 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쿠팡이기에 실증을 위해 필요한 물량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겠다는 복안입니다. 앞서 쿠팡은 PLZ, 김천시, 경상북도 등과 업무협약을 통해 실증 사업의 물동량을 지원하기로 약속했고요. PLZ에 의하면 쿠팡 역시 율곡동 생활물류복합센터를 배송거점이자 분류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입니다.
“도심내 배송 거점이 도입되면 도심 외곽에서 시작되는 기존 배송 방식에 비해 배송거리는 약 80% 이상, 배송 시간은 약 20%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천시 안에서 운영되는 배송차량의 운행거리가 연간 43만8000km(하루 20대 기준) 단축되는 셈입니다. 쿠팡은 사업 실증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와 탄소 배출 저감이라는 친환경 효과도 검증할 예정입니다”
- 쿠팡 보도자료 갈무리
쿠팡이 산간벽지, 인구소멸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을 대상으로 ‘로켓배송’ 확장을 천명한 만큼, 이번 규제자유특구 사업내 물류 서비스 강화는 각별한 의미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는데요. 김천시는 그 자체로 인구소멸지역에 포함되고요. 또한 이번 특구에서 진해되는 물류 실증은 정부, 지자체, 중소 물류 및 제조기업 간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쿠팡도 상생 브랜딩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이 분명하다는 거죠.
그리고 PLZ는 김천시 생활물류복합센터의 효율 검증을 통해, 해당 모델을 전국구까지 확장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실증’ 단계에 있어 검증이 더 필요한 사업이지만요. 해당 사업의 성공을 김천시에서 증명한다면, 여러 지자체에서도 유사한 사업들이 우후죽순 등장할 것을 바라는 것인데요. 이렇게 된다면 아직은 우리 눈에 익숙하지 않은 주차장과 자전거를 활용한 친환경 로컬 물류 서비스가 우리 동네 곳곳에서 보이는 날도 머지않을 수 있겠습니다. 박순호 대표의 포부로 마무리합니다.
“이번 사업의 확장은 저 혼자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한 사업인 만큼, 좋은 성과를 만든다면 김천시가 일종의 모델하우스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여타 지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주차장이나 주유소 등 다른 유휴 부지를 활용한 물류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현재 우리가 맡고 있는 김천시의 물류 사업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 박순호 PLZ 대표
※ 이 콘텐츠는 경북 스마트그린물류 규제자유특구의 협찬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