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트윈과 피지컬 AI, 공장 물류에 다가온 테슬라 모먼트
“AI가 공장에 들어온다고 해서 알아서 똑똑해지는 건 아닙니다”
2025년 4월 15일, 유니티(Unity)가 주최한 연례 기술 컨퍼런스 ‘유나이트 서울(Unite Seoul) 2025’에서 마이크를 잡은 장영재 다임리서치 대표(카이스트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의 말입니다. 그는 제조 자동화의 본질은 로봇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운영 전략의 학습’에 있다고 했습니다.
과거 컨베이어 벨트 기반의 제조 라인은 단일 품종 생산에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품종·소량 생산이 기본입니다. 끊임없이 바뀌는 공장 레이아웃, 설비 구조, 작업 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계획된 자동화가 아닌, ‘적응하는 자동화’가 필요합니다.
이 핵심 개념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피지컬 AI(Physical AI)입니다. 일반적인 인공지능이 컴퓨터 속 데이터 세계에서만 작동한다면요. 피지컬 AI는 로봇이 실제 공간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이도록 만드는 기술입니다. 쉽게 말해, 공장 안에 눈과 귀, 팔과 다리를 달아주는 AI인 셈입니다.
“피지컬 AI는 단순 자동화가 아닙니다. 로봇이 환경을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공장 전체를 최적화하는 시스템입니다. 디지털 트윈은 이 학습의 장(場)이며, AI는 그 안에서 전략을 진화시킵니다”
디지털 트윈, 로봇 학습의 가상 실험실
다임리서치의 핵심 기술은 이기종(異種, 제조사·기능이 다른) 물류 로봇들을 하나의 통합 플랫폼에서 제어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입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활용되는 개념이 바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입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의 공장, 설비, 로봇 등의 움직임과 환경을 가상공간에 그대로 복제한 3D 시뮬레이션 모델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3D 모형이 아니라, 실제처럼 물리법칙의 영향을 받고, 시나리오에 따라 로봇이 행동하게 됩니다. 이 가상공간 속에서 로봇은 스스로 움직임을 실험하고 학습합니다. 이 과정을 가능케 하는 것이 유니티(Unity) 기반의 물리 엔진입니다. 이는 원래 게임 개발에 사용되던 기술이지만, 이제는 로봇 시뮬레이션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한 움직임뿐 아니라, 실제 공장 운영에서처럼 “주문이 들어오고, 재고를 확인하고, 생산 순서를 조정하는 논리적 흐름”까지 시뮬레이션 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를 이산사건 시뮬레이션(Discrete Event Simulation)이라 부릅니다. 다임리서치는 이 두 엔진을 결합해 실물 모사와 논리적 의사결정이 동시에 가능한 피지컬 AI 시스템을 구현했습니다.
다임리서치는 공장 설계 자동화 기술도 함께 개발했습니다. 예전에는 CAD(캐드) 도면을 기반으로 설계를 시작하더라도, 공장 운영 시나리오에 맞춰 경로, 충돌 여부, 로봇 수 등을 일일이 사람이 조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CAD 파일만 불러오면, 디지털 트윈 환경에서 자동으로 로봇 경로가 생성되고 충돌 방지 로직까지 자동 계산됩니다.
이 시스템은 앞바퀴 조향, 후륜 조향, 제자리 회전 등 로봇의 구동 방식이 다르더라도, 각 로봇이 지나갈 수 있는 경로나 회전 반경을 자동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최적화합니다. 과거 2~4주 이상 걸리던 시뮬레이션 작업이 하루 이틀 만에 완료되는 이유입니다. 장 대표에 따르면 새 공장의 운영 시작까지 걸리는 준비 시간은 기존 12개월에서 단 3개월로 줄었습니다.
공장의 테슬라 모먼트, 생각하는 공장의 탄생
장 교수는 제조 자동화의 다음 단계를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SDF, Software-Defined Factory)’이라 말합니다. 마치 스마트폰에서 하드웨어를 바꾸지 않고도 앱만 업데이트하면 기능이 달라지듯, 공장도 하드웨어를 그대로 둔 채, 운영 전략과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통제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장 교수가 말한 SDF 개념은 자동차 업계, 특히 테슬라가 도입한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Software-Defined Vehicle) 아키텍처’와 유사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장의 설비와 로봇들이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해 통합적으로 운영되고 업데이트 가능해야합니다. 이 아키텍처가 완성되면, 제조 AI는 공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나의 통합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공장을 짓는 게 아닙니다. 학습하고 적응하는 운영 전략을 만드는 겁니다” 장영재 대표의 이 말은 제조와 물류 산업이 맞이한 본질적 전환을 함축합니다. 단순히 로봇을 많이 도입한다고 해서 ‘스마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장의 전략, 운영 방식, 데이터 흐름 자체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자동화가 아니라 ‘학습’입니다. 변화하는 레이아웃과 생산 조건에 맞춰 공장이 스스로 최적의 방식을 학습하고, 로봇은 그 전략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피지컬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운영의 새로운 언어이자 지속 가능성과 민첩성의 출발점입니다. 복잡성이 커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제조 환경 속에서, 피지컬 AI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시스템에 이식하는 새로운 표준이 될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공장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야 할 시점입니다.
Who is. 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이자 딥테크 스타트업 다임리서치 대표. 미국 MIT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경영공학 석사를 병행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본사에서 전략기획과 비용 최적화 프로젝트를 주도했으며, 현재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트윈 기술을 결합한 자율 제조 및 물류 시스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