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X 레모나 쟁탈전과 수요 예측

2000년대 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콘돔은 우리나라 콘돔이었다. 대한민국 콘돔 (K-콘돔인가?)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기업이 바로 ‘유니더스’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벤조카인을 활용한 사정 지연 콘돔 롱러브를 출시함으로써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때는 전세계 조달 시장에서 콘돔 부문 최강자를 기록하기도 했다(브라질 히오 카니발처럼 모두가 맨살 드러내고 미친 듯이 춤만 추는 시기에는 정부에서 콘돔을 뿌린다). 아무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강소기업이었다.

유니더스 로고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 했던가. 2013년 라텍스 가격이 치솟으면서 유니더스는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프리미엄 콘돔으로 주가를 올리던 ‘오카모토’, ‘사가미’와 맞서기에는 제품력이 부족했고, 충격적인 광고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듀렉스’와 경쟁하기도 힘들었다. 사세는 점점 축소되어 2017년 말 바이오제네틱스 투자조합이 지분을 인수하고 사명을 ‘바이오제네틱스’로 변경했다.

그리고 그 바이오제네틱스는 사명이 보여주듯 콘돔 회사에서 명실상부한 바이오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경남제약을 인수한다. 경남제약은 2018년 2월 회계처리기준 위반으로  상장폐지 직전까지 간 상태였다. 지난 2019년 5월 바이오제네틱스가 경남제약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경남제약의 주인은 콘돔회사 구 유니더스, 현 바이오제네틱스로 바뀐다.

유니더스 인수 기사 캡처

경남제약이 어떤 회사던가? 1957년 설립된 업력 63년의 회사로, 1983년 출시한 레모나와 관련 제품이 회사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했고 매출의 99%가 내수 매출인 곳이었다. 원래 회사를 인수하면 인수 비용을 뽑아야 하기 마련이다. 내수가 주력이던 회사는 수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지난 2019년 10월, 경남제약은 글로벌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하 BTS)을 레모나 모델로 발탁하고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레모나 광고 효과는 예전부터 유명했다. 추억의 하이틴스타 하희라, 유호정, 정혜영, 김현주를 비롯하여 아이유, 김수현 등 섭외비가 상당한 모델들을 많이 썼다.

아주친숙한 레모나 광고 모델들

아무리 광고 하나는 훌륭한 회사였다고 하지만 내수 중심의 기업이 수출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것은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전한 만큼 성과는 따랐다. BTS를 광고모델로 기용한 후 출시된 레모나-BTS 패키지는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바바에서도 완판을 기록했다. 시장 공략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셈이었다. 레모나 제품 매출은 평소 대비 5배 가량 성장했다. 경남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사몰인 레모나프렌즈 몰을 열고 온라인 쇼핑으로 손을 뻗기 시작했으며 아예 BTS 굿즈만 파는 공식 쇼핑몰에도 입점했다고 한다. 바쁘게 공장을 돌려야 하는데 혹시나 파업이라도 일어날까봐 임단협까지 마무리하고 이 모든 작업을 했다고 하니, 철저한 준비로 진행하는 것이다.

레모나 프렌즈몰 메인 화면. 아래쪽을 잘 보면 8가지 이미지가 순서대로 나타난다. 왜 그런지는 잘 아시리라 믿는다.

그러다 보니 현재 시장에는 BTS 패키지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강남 대형 약국에서 샀다는 소문도 들리고, 동네 약국은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다. 어쩌다 가 보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와서 싹쓸이를 해 갔다’는 말도 들었다.

BTS가 무슨 잘못이겠는가? 평소보다 생산을 3배 늘렸다는 공장 잘못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저 제약산업처럼 수요 예측하기 그리 어렵지 않은 업종 종사자가 갑자기 넓어진 시장을 감안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제약산업처럼 수요예측 난이도가 높지 않은 (제약산업은 판매 채널이 고정되어 있고 약은 취향에 따라 바꾸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수요 예측이 비교적 용이하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레모나처럼 이미 성숙기를 오래 전에 지난 스테디 제품은 더욱 용이하다) 업종에서 예측하기는 벅찼다.

생각해 보자. BTS를 광고모델로 기용하면서 레모나의 시장과 판매 채널은 ‘갑자기’ 확대되었다. 지금까지의 광고모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시장 파급력을 지닌 BTS가 모델이 되면서 갑자기 중국과 베트남 등지로 수출하게 되었고 온라인 쇼핑몰이 문을 열었다.  BTS 팬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앨범이 출시되면 버전별로 다 사는 팬도 흔하다. 그런데 BTS 패키지는 랜덤으로 구성되어 있다. ‘팬들이 레모나를 안 먹어도 멤버 7명의 레모나 포장을 다 얻기 위해 일부러 많이 산다’는 사실까지는 수요를 예측할 때 미처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 BTS 패키지를 사는 사람들은 ‘멤버 7명이 다 나올 때까지 산다’는 생각이 있다고 한다. 누구는 세 통을 사니 7명 다 나왔고, 누구는 두 통만에 나왔다고 하는 후일담이 전해질 정도다. 평상시 이런 거대한 프로모션을 글로벌하게 해 봤다면 데이터가 쌓여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했을 것이고 미리 재고를 쌓아 놓고 공급에 대비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99% 내수매출을 전문으로 하던 회사에서 예측하기에는 분명히 벅찼다는 것이다.

이제 해당 회사의 SCM관리능력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앞으로를 봐야 한다. 얼마나 빨리 증산을 해서 시장 수요를 맞출 수 있을지, 그러면서도 아미(BTS 팬덤 명칭)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제대로 패키지 품질을 관리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실제 BTS 광고 효과에 고무된 경남제약은 레모나 음료도 판매를 확대하고 매출을 크게 늘릴 기세다. 그럴수록 수요 예측 못지 않게 생산능력이 따라가 줄지, 그리고 만약 외주생산을 한다면 품질 관리를 잘 해낼 수 있을지 지켜보자.

BTS가 상장폐지되었다가 살아난 경남제약을 살리고 있고, 모기업인 콘돔회사 바이오제네틱스도 살리고 있다. 요즘 같이 돈 버는 사람이 없다는 세상에 반가운 소식이다.

BTS  패키지 중국 완판 소식 후 경남제약 주가

군 복무를 하며 물류에 뜻을 둔 이후 제조업체 IT일을 하며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중. 은유와 위트 넘치는 독특한 필체와 외부강의 경험으로 더 생생한 물류와 공급망 관리의 세계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는 은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