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다이내믹스 창업자가 전하는 요즘 로봇 진격 방향(feat. 물류)
글. 이태호
Pickool (픽쿨) Inc.의 창업자 겸 CEO입니다. 창업 이전에는 12년간 Oracle 및 KT, Gartner 등 주요 테크 기업에서 전략 및 상품 기획, 해외 사업 개발, 영업, 컨설팅 등의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저서로는 <물류 트렌드 2022> 집필에 함께 참여한 바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 산하의 La French Tech 내 Seoul 지부의 이사회 일원으로 활동중입니다.
※ 이 콘텐츠는 커넥터스와 ‘픽쿨’의 제휴를 바탕으로 제작됐습니다.
1.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전 세계 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는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글로벌 AI 서밋(GAIN, Global AI Summit)’이 개최됐습니다. 이 행사는 AI 기술의 최신 동향과 미래 전망을 공유하는 자리로 전 세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2. 특히 주목받은 세션 중 하나는 약 20분 간 진행된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창업자 마크 레이버트(Marc Raibert)의 발표였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0년 11월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과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등 첨단 로봇 개발로 유명합니다.
3. 참고로 현대자동차가 인수하기 이전에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구글의 자회사였고, 그 이후 소프트뱅크그룹을 거쳤습니다. 여전히 소프트뱅크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 20% 가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4. 이 날 마크 레이버트 창업자의 20분 발표를 통해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꿈꾸는 AI 로봇의 현황과 미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물류’ 영역에서 로봇 활용 사례가 언급됐고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사 중 하나라는 점에서 현대자동차그룹과의 시너지 의지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AI와 로봇 기술은 어떻게 결합되나
5.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2년 8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보스턴다이내믹스 AI 연구소(Boston Dynamics AI Institute)’를 설립했습니다. 마크 레이버트 창업자가 연구소장을 맡았으며, 4억달러 이상의 초기 투자를 받았습니다.
6. 마크 레이버트에 따르면 이 연구소는 대학교 연구실의 창의성과 기업 연구소의 집중도를 모두 결합한 기관입니다. 향후 로봇과 AI 분야의 ‘벨 연구소’와 같은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7. 보스턴다이내믹스 AI 연구소는 ‘인지지능(Cognitive Intelligence)’과 ‘운동지능(Athletic Intelligence)’을 결합한 AI 로봇 기술 개발에 주력합니다. 마크 레이버트에 따르면 이 두 가지는 인간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지능으로, 이를 바탕으로 로봇이 더 자연스럽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8. 먼저 인지지능은 계획을 세우거나, 언어를 활용하고, 대화를 이해하는 등 주로 두뇌에서 일어나는 인지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최근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과 함께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9. 다음으로 ‘운동지능’은 신체 움직임과 실시간 환경 상호 작용과 관련된 지능입니다. 운동선수의 경기 중 상황 판단이나 일상적인 보행과 균형 유지 등이 운동지능을 활용한 능력에 해당합니다.
10. 마크 레이버트는 “생명체의 운동지능이 로봇 기술 개발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다”고 언급했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로봇 개발 전반에 인간 유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환경에 적응하여 학습하는 방식을 적용한 것은 유명한 사례입니다.
11. 구체적인 예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산악 염소(Mountain Goat)의 정교한 등반 능력을 모방하여 옆에서 발로 차이더라도 균형을 회복하고, 눈과 진흙, 바위, 언덕 등 매우 거친 지형도 이동할 수 있는 ‘빅독(Big Dog)’을 15년 전 개발했습니다.
12. 또 치타의 고속 주행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최고 시속 28.3마일(약 45.5km)로 달리는 로봇 ‘치타’를 2012년 개발했습니다. 치타가 실험실 환경에서 개발한 로봇이라면 2013년에는 실외 환경에서 시속 16마일(약 25.7km)의 속도로 운영할 수 있는 와일드캣(Wild Cat) 로봇을 공개했습니다.
13. 마크 레이버트에 따르면 이후 더 발전한 로봇 모델들은 약 200kg의 무거운 짐을 싣고 약 20마일을 이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시속 약 20마일로 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다리 달린 로봇 개발에도 성공했습니다.
상용화된 사족 로봇 ‘스팟’의 용처
14. 여러 개발 과정을 통해 보스턴다이내믹스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상용화하여 판매하고 있는 사족보행 로봇이 ‘스팟’입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2000대의 스팟 로봇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주요 사용 지역은 유럽, 북미, 일부 아시아 지역이며 행사가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도 일부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15. 스팟은 주로 인간이 직접 하기에는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을 대체하고 있었습니다. 멕시코만 석유 시추 장치 점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과 일본 후쿠시마 원자로 방사선 측정 작업 등에 스팟이 투입돼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후쿠시마에서는 두 대의 스팟 로봇이 계단을 오르고 문을 열어 처음으로 4호 원자로 내부에 들어가서 측정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16. 이 외에도 스팟은 정유 공장과 같이 복잡한 환경에 투입돼 시설을 모니터링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집적회로(IC칩) 제조 시설에서는 기계 상태를 점검하고 유지 보수 필요성을 파악하는 데 쓰이고 있었습니다. 스팟은 실제 세계와 디지털 환경의 연동성을 만드는 ‘디지털 트윈’을 구현했다는 마크 레이버트의 평가입니다.
17. 마크 레이버트 창업자는 4족 로봇 기술은 특정 기업의 독점 영역을 넘어 다양한 기업들이 참여하는 경쟁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만큼 로보틱스의 황금기가 열렸으며 기업들은 이제 로봇의 활용 여부를 결정하기보다는, 어떤 로봇을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갔다고 보았습니다.
물류부터 제조까지, 로봇의 응용 분야
18.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바라보는 타깃 산업에 대한 이야기도 공유됐습니다. 마크 레이버트는 이커머스 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물류 처리’ 수요가 폭증했다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그만큼 창고 자동화 기술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수요에 대응하고자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물류 로봇 ‘스트레치(Stretch)’를 개발하여 2021년 발표했습니다.
19. 스트레치는 운송트럭 상하차, 팔렛타이징, 디팔렛타이징을 포함하여 다양한 창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자율주행 로봇에 흡입 패드가 달려있는 그리퍼(Gripper)가 달려있는데, 이를 통해 최대 23kg의 상자를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20. 또한 스트레치 로봇은 고급 비전 시스템을 탑재하여 처리할 박스를 식별하고, 최적의 작업 순서를 결정할 수 있었는데요. 지속적인 기술 개선을 통해 2023년 10월에는 한 번에 여러 개의 박스를 처리하는 ‘멀티픽(Multi Pick)’ 기능을 추가하는 등 효율성이 향상되는 중이란 설명입니다.
21. 현재 스트레치 로봇은 DHL, AB인베브, 머스크 등 주요 물류, 제조기업의 창고에서 시험 운영 중이며 인간 작업자와 유사하거나 그 이상의 속도로 박스를 처리하고 있다는 회사측 평가입니다. 마크 레이버트에 따르면 스트레치 로봇을 활용할 경우 연간 전 세계적으로 처리되는 약 500억개의 박스 중 상당 부분을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22. 여기 더해 로봇 기술은 물류산업을 넘어 제조업으로도 빠르게 확산하는 중이었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은 부품 취급, 조립 공정 작업, 대형 부품 처리 등 제조 현장에서 인간이 수행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회사측의 주장입니다.
23. 마크 레이버트 창업자는 이날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틀라스’를 강조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아틀라스는 뛰어난 운동 능력과 균형 감각을 갖추고 있으며, 온보드 컴퓨터와 비전 시스템을 통해 복잡한 환경에서도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24. 마크 레이버트 창업자는 아틀라스 로봇이 동적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 균형을 잡고, 심한 방해를 받더라도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25. 참고로 아틀라스는 현대자동차 공장에 시험투입 되기도 했는데요. 마크 레이버트는 현대자동차 내 자동차 수리 및 조립 작업을 예로 들면서, 로봇이 인간 프로그래머의 개입 없이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를 남겼습니다.
26. 이로 인해 앞으로 산업 현장의 혁신적인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게 마크 레이버트의 전망인데요. 특히 2024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로봇 컨퍼런스(World Robot Conference)’에서 27개 사업자가 각기 다른 휴머노이드 로봇을 출시한 사례를 예로 들며 향후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27. 그렇다면 이런 기술의 발전은 아름다운 미래만 있을까요? 보스턴다이내믹스 AI 연구소는 기술 개발과 더불어 윤리 및 정책 연구에도 주력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AI와 로봇 기술 발전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책임 있는 기술 개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윤리적, 정책적인 고려 없이 기술이 사회에 나온다면 나타날 수 있는 악영향을 사전에 막겠다는 의도가 여기 엿보였습니다.
28. 저는 이번 마크 레이버트의 발표를 화면 너머로 지켜봤는데요. 질의응답을 통해 원론적인 발표 내용을 넘어서는 토론이 나오길 기대했으나, 단순히 서비스를 소개하고 마무리되는 진행이 반복되는 분위기여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