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물류·공간·일상의 재편을 말하다(프롤로그)
매일 아침 7시, 아파트 현관 앞에 놓인 택배 상자들. 점심시간 사무실 로비로 몰려드는 배달 오토바이들. 밤 11시,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며 내일 아침에 받을 생필품을 주문하는 손길들. 이 일상적인 풍경 뒤에 숨겨진 숫자가 있다. 하루 평균 1,400만 개. 대한민국에서 매일 움직이는 택배 상자의 개수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건 단순한 물류량 증가가 아니다. 우리가 직접 움직여야 했던 1,400만 번의 이동이 택배차와 배달 오토바이로 대체되었다는 뜻이다. 사람의 이동 패턴이 바뀌면서, 도시 자체가 다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는 건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동'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지금, 그 이동을 설계하는 주체는 더 이상 건축가나 도시계획가가 아니다.
■ 플랫폼이 먼저 흐름을 만들고, 건설이 뒤따른다
쿠팡은 단 한 번도 "우리가 도시를 바꾸겠다"고 선언한 적이 없다. 배달의민족도 도시계획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들은 단지 더 빠르고 편한 서비스를 약속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를 보자. 로켓배송이 시작되자 동네 마트의 진열대가 줄어들었다. 새벽배송이 대중화되자 주거단지마다 냉장 택배보관함이 필수가 되었다. 배달앱이 일상화되자 식당들은 홀 공간을 줄이고 주방을 확장했다.
플랫폼들이 생활의 '흐름'을 먼저 설계했고, 도시 공간이 그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도시 개발에는 명확한 순서가 있었다. 정부가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사가 건물을 짓고, 상점과 주민이 입주해서 도시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플랫폼이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고,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고, 그제야 건설사가 그 변화에 맞춰 공간을 설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