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짜리 부품이 분실됐는데 70만원만 배상받았다
물류 전문 변호사가 공개하는 '계약서 한 줄'의 법적 파워
물류 분쟁은 업계 간 정보 비대칭이 상대적으로 적어 다른 상거래 분쟁보다 합의율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상법상 운송인의 책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손해액과 법적으로 인정되는 배상액 사이에는 큰 차이가 발생한다.
송희라 법무법인 한원 변호사는 화주 기업이 계약 단계에서부터 이 같은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명확한 손해배상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운송 지연과 같이 특정일 인도에 관한 합의 사실과 손해액의 입증이 어려운 사안일수록, 계약서나 사전 협의 문서에서 보호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해상운송은 1년, 항공운송은 2년 등 제소기간이 매우 짧은 만큼, 분쟁 예방을 위해 사전 통지와 기한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케이스를 열어 보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약 4억 원짜리 군용 기계부품이 사라졌습니다."
한국 방위사업청은 영국으로 보내야 할 고가의 기계부품이 항공운송 중 분실되자 즉시 보험사에 연락했다. 보험사는 4억 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고 항공사를 상대로 구상금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고였고, 항공사도 사고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판결은 충격적이었다.
"항공사는 화물 1kg당 16.66 계산단위(국제 통화기금 특별인출권, SDR 기준)에 해당하는 금액, 즉 약 70만 원만 배상하면 됩니다."
항공화물운송장 이면약관에 기재된 항공 운송인의 책임 제한 규정에 따른 판결이었다. 최종적으로 보험사는 4억 원을 청구했으나 70만 원만 받고, 소송비용 부담까지 떠안게 되었다.
"계약서에 단 한 줄만 추가했더라면 4억 원 전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법무법인 한원의 송희라 변호사는 수많은 물류 분쟁 사례를 다뤄온 실무 전문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분쟁은 대부분 계약 체결 단계에서 예견된 것이며, 그 원인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 무지다. 계약서가 단순한 '형식 절차'로 인식되는 현실 속에서, 기업들은 고비용의 법적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계약서가 곧 기업의 리스크 매뉴얼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계약 없는 리스크 관리란 없다
물류 산업은 계약 기반 위에서 움직인다. 운송, 보관, 통관, 인도 등 모든 프로세스는 계약서 조항에 따라 책임이 배분된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여전히 구두나 관행에 기대고 있으며, 책임의 주체와 범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다. 더구나 보험, 계약, 법률 간 상충이 발생하는 경우, 실무자는 무엇을 기준 삼아 대응해야 할지조차 혼란스러워한다.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송 변호사가 정리한 물류 분쟁의 일반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Cargo Claim 접수 → 2. 보험사(P&I 등) 통보 → 3. 책임관계 검토 → 4. 협상 → 5. 회수(Recovery)
겉으로 보기엔 체계적이지만, 실상은 조항 누락과 책임 미확정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단 하나의 문장이 기업의 손익을 뒤바꾸기도 한다.
실제 사례로 본 분쟁의 실체
사례 1: 항공운송 중 분실—4억 원 손실의 이면
방위사업청이 한국에서 영국으로 항공운송을 의뢰했고, 운송 도중 화물이 분실됐다. 손해 규모는 약 4억 원. 그러나 항공사는 국제협약에 따라 1kg당 약 16.66 계산단위(SDR)를 기준으로 책임을 제한했고, 실제 보상액은 고작 70만 원이었다. 화주가 청구한 금액과 실제 배상액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
이런 책임 제한이 존재하는 이유는 주목할 만하다. 운송 산업의 특성상 운임은 화물의 가격이 아닌 중량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운송 산업이 태동하던 시절에는 해상·항공 운송 모두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기에, 산업 보호 차원에서 이러한 규정이 도입되었다. 이는 국내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상당 수의 국가가 가입한 국제협약과 국제 조약에 기반을 둔 것이다.
사례 2: 컨테이너 미반납—초과사용료와 손해배상 소송
한 수출기업이 인도 수입자와 거래한 뒤, 현지에서 컨테이너가 제때 반납되지 않았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47대의 컨테이너가 반납되지 않았는데, 운송회사는 이 기간 동안 한 번도 컨테이너 반납 지연에 대해 언급하지 않다가 2014년에 갑자기 약 23억 원의 체화 비용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운송 계약을 체결한 수출자가 컨테이너 체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컨테이너 사용료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아 법원이 재량으로 크게 감액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제로 이 사례에서는 원고가 청구한 금액 중 80% 이상이 감액되어 약 4억원 정도만 인정되었다.
이러한 분쟁은 단순한 사례가 아니다. 국내외 판례를 보면 '부지약관'(운송인이 화물의 수량, 중량, 상태 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표시), '제소기간', '과실추정', '손해액 산정 방식' 등이 매번 쟁점이 된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 핵심 항목을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채 관행대로 진행하다 큰 비용을 치른다.
분쟁을 부르는 다섯 가지 착각
송 변호사는 물류기업이 반복적으로 빠지는 오해 다섯 가지를 짚는다.
1. 보험이 모든 손해를 보상해 줄 것이다?→ 보험은 일정 비율만 보상하며, 계약상 면책조항과 충돌할 경우 보장이 제한된다.
2. 무하자 선하증권이 발행되었으나 도착지에서 손상 등 사고가 발생한 경우 무조건 운송인의 책임이다?→ FCL(Full Container Load) 조건이면서 선하증권 전면에 부지약관(Said to Contain 등)이 기재되어 있으면, 운송인은 실제 내용물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다.
3. 제소기간은 넉넉하니 대응하면 된다?→ 국제 해상운송은 1년, 항공은 2년. 게다가 항공사고인 경우에는 14일(멸실/훼손), 21일(연착)로 짧게 규정된 사전 통지 기한을 준수하여야 한다.
4. 운송인이 클레임을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다?→ 대부분의 클레임은 송하인이 직접 제기해야 하며, 운송인의 책임구간에서 사고가 발생한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도 본인에게 있다. 운송인이 무하자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다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화주에게 입증 책임이 돌아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해당사자들간 주고받은 견적서, 교신자료, 포장을 비롯하여 화물의 상태 등 운송계약 및 사고와 관련된 자료를 폭 넓게 확보하고 운송인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5. 지체료는 무조건 받을 수 있다?→ 미국 해운법 개정안은 선사가 지체료 부과의 합리성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우리나라 역시 체화료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아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상당히 감액될 수 있다. 이제는 지체료도 법적 정당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실무자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계약의 핵심
물류 계약에서 분쟁을 방지하려면 다음 네 가지 항목은 반드시 계약서에 명시되어야 한다.
① 책임 제한 조항
화주기업 입장에서 운송인의 이면약관에 기재된 운송인의 책임제한 규정 내지는 상법상 책임제한 규정을 배제하고자 한다면 계약서에 특약으로 손해액을 산정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송희라 변호사는 "을의 귀책사유로 갑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을은 갑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는 일반적인 계약 문구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강조한다. 이 경우 법원은 운송장 이면약관의 규정 내지는 상법에 따라 제한된 책임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화주 기업이라면 "을의 귀책사유로 갑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을은 법률상 손해(상법상 손해) 외에 인보이스 밸류 전액과 재운송 비용, 재조달 비용 등을 포함한 모든 손해를 배상한다"는 문구를 삽입해야 한다. 반면 운송 기업이 계약할 때는 단순히 "손해를 배상한다"는 문구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경우 자동으로 상법상 책임 제한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② 부지약관의 효력 여부
FCL(Full Container Load) 조건에서 봉인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도착한 경우, 운송인은 손해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관행이 있다.
화주가 자물쇠를 채운 컨테이너를 운송인에게 인계할 때, 운송인은 컨테이너 내부 상태를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운송인이 발행한 운송장에 "송하인이 화물을 적입하고, 무게를 측정하고, 수량을 계산했다"는 부지 약관이 기재되면, 운송인은 내부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컨테이너 자체에 구멍이 뚫린 경우에는 다시 입증 책임이 운송인에게 돌아간다.
③ 제소 및 통지 기간 관리
사고 발생 후 '언제까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클레임을 제기하여야 하는지를 명확히 확인하여야 한다. 통상적으로는 운송인이 발행한 운송장의 이면에 구체적인 내용이 규정되어 있고, 이면약관의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최소한 상법의 규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④ 손해액 산정 방식
컨테이너 지체료, 초과보관료 등은 무료 사용기간, 보관료율 등 계산 기준이 계약서에 정의돼야 한다. 운송지연의 경우와 같이 사고의 유형 상 손해액을 사전에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 "을이 약속을 위반할 경우 위약금 내지 위약벌으로 5억 원을 지급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금액을 명시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액에 대한 입증 부족으로 패소할 수 있다.
물류 계약 실무 체크리스트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물류 계약 체크리스트를 제시한다.
1. 계약서 내 운송 구간별 책임 명시(수령~인도 전 구간)
-. 육상, 해상, 항공 등 각 구간별 책임 주체를 명확히 기재
-. 포워더가 있을 경우, 실제 운송인과 계약 운송인의 책임 구분
2. 손해배상 시점 및 책임 한도에 대한 수치화
-. 상법상 책임 제한 규정 외 추가 배상 범위 명시
-. 화물 가액 전액 보상 여부와 조건 기재
-. 위약금이나 손해배상 예정액 설정 (소송 시 감액될 수 있으나 기준점 역할)
3. 제소기한, 사전 통지 기한 등 절차적 요건 확인
-. 약관상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해상: 1년, 항공: 2년, 창고업자: 1년 이내
-. 항공사고의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14일(멸실/훼손), 21일(연착) 내 사전 통지 의무가 있음.
4. 보험 약관과 계약 내용의 정합성 점검
-. 운송 계약서와 화물 보험 간 보장 범위 비교
-. 면책 조항이 중복되지 않도록 검토
-. 보험사 통보 절차 및 기한 명시
5. 컨테이너 보증금, 지체료, 반환 조건 등의 비용 조항 구체화
-. 무료 사용 기간 (Free Time) 명시
-. 일일 체화 비용 (Detention Charge) 상한액 설정
-. 불가항력 상황 시 면제 조건 추가
운송 지연의 손해배상: 입증의 어려움과 해결책
물류 분쟁에서 가장 입증하기 어려운 손해 유형은 '운송 지연'이다. 상법은 "예정 도착일의 시가와 지연 도착 시의 시가 간의 차액"만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배상받기가 매우 어렵다.
송희라 변호사는 "의류 원단이 잘못 배송되어 생산이 지연되고, 결국 항공 운송으로 납기를 맞추느라 추가 비용이 발생한 사례에서도, 화주는 단순히 예정된 도착일의 시가와 지연 도착 시의 시간 간의 차액만 배상받을 수 있는데, 결국 위 차액에 대한 입증 부족으로 손해배상을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물류 현장에서 매우 흔한 상황이다. 한 생산업체가 중요한 부품이나 원자재의 운송 지연으로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인건비를 낭비하거나, 납기를 맞추기 위해 항공 운송으로 전환하는 등 실질적인 손해가 발생해도, 법원은 해당 물품의 단순 가격 차이만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운송 지연이 중요한 요소라면, 계약 단계에서 이에 대한 명확한 약정이 필요하다. 이메일로라도 "이 물건은 특정 박람회 출품용으로, 기한 내 도착하지 않으면 A, B, C 항목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송 변호사는 이렇게 조언한다. "견적서나 이메일에 '이 화물은 생산 라인 투입용이므로 약속된 납기일에 도착하지 않을 경우 일일 생산 중단 비용 2,000만원과 인건비 500만원이 발생합니다'라는 문구를 넣고, 운송회사의 확인을 받아두세요. 이런 간단한 문서 하나가 나중에 수천만 원의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물류 분쟁은 발생 전에 이미 결정된다
물류 분쟁은 일단 발생하면 상법의 책임 제한 규정으로 인해 화주 기업이 완전한 배상을 받기 어렵다. 따라서 사전 예방과 계약 설계가 핵심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제소 기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는 해상 운송은 1년, 항공 운송은 2년, 창고업자에 대한 청구도 1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 기간이 도과하면 소송을 제기할 권리 자체가 상실된다.
"물류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지만, 그 해결책은 사고 발생 전에 준비되어야 합니다. 손해를 입증하는 능력보다 손해를 방지하는 계약 설계가 더 중요합니다." 송희라 변호사의 이 말은 물류 분쟁 해결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다.
물류는 기업 활동의 핵심 혈관이다. 이 혈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법적 면역 체계를 미리 구축해 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약서의 한 줄, 이메일의 한 문장이 수억 원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Who is.
송희라ㅣ법무법인 한원 변호사. 물류와 법을 동시에 전공한 국내 유일의 물류 전문 변호사로, 화물의 이동과 보관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를 소송 과정을 통해 해결해왔다. 인하대학교 물류전문대학원에서 물류학 박사 과정을 수료 했으며, 같은 대학 법학전문대학원과 아태물류학부를 졸업했다. 현재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심판변론인과 서울중앙지방변호사회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TF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법무법인 로베이스, 법률사무소 우창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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