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 물류센터 > 풀필먼트의 유래

: 원가(제조) → 속도(유통) → 소비자(온디맨드)

얼마 전 모 신발회사는 자사몰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오후 1시까지 주문결제를 완료하면 오후 6시까지 상품을 배송하는 ‘오늘도착’ 서비스를 선보였다. 또 오후 3시까지 주문하면 저녁 7시까지 배송해주는 온라인 수산시장부터 30분~1시간 내 식료품을 배송해주는 온라인 마트까지 우리는 ‘빠른 배송’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빠른 배송은 온라인 고객들의 구매 경험을 개선하는 핵심가치가 된다. 왜냐면 온라인 주문부터 결제까지 걸리는 시간은 크게 단축됐지만, 배송의 영역은 여전히 ‘기다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빠른 배송은 소비자에게 오프라인 구매 경험을 대신하는 또 다른 이름이 된다. 그래서 요즘 쿠팡, 네이버 등 이커머스 시장에서 MFC(Micro Fulfillment Center)와 LDN(Last-mile Delivery Network)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빠른 배송을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빠른 배송을 만드는 풀필먼트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나이키는 나이키닷컴 회원들을 대상으로 오후 1시까지 주문결제를 완료하면 오후 6시까지 당일배송을 해주는 오늘도착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출처: 구글

시대에 따른 용어의 변화

풀필먼트(fulfillment). 우리말로 옮기자니 마땅한 단어가 없다.

오더 풀필먼트(order fulfillment)는 ‘주문 이행’, 혹은 ‘주문 충족’으로 번역이 가능할 것 같다. 주문 충족이라는 개념은 고객의 주문을 만족시키는 전체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즉 이커머스에 있어 풀필먼트는 고객의 주문에 맞춰 물류센터에서 제품을 피킹(picking), 포장(packaging)하고 배송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process)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풀필먼트라는 단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생각해보자. 물류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기 전인 2000년대 초반에는 ‘OO운수’, ‘OO운송’과 같이 수·배송에 관련된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OO창고’와 같은 단어도 익숙하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물류라는 단어로 바뀌었고, 수·배송과 보관·창고가 물류와 연결됐다. 이후 창고라는 단어는 점차 줄어들고, 대부분 창고는 ‘물류센터’ 혹은 ‘물류창고’로 불렷다.

4~5년 전부터는 그 창고를 ‘풀필먼트 센터’라고 부른다. 인력에 의존하던 수작업 중심의 창고가 컨베이어벨트, 자동화 설비가 구축된 물류센터가 되더니, 이제는 로봇과 첨단 IT 기술이 총출동한 풀필먼트 센터로 그 모습을 바꾼 것이다.

● 온디맨드와 물류의 재해석

이러한 변화는 산업의 변화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1990년대 이전의 산업은 품질과 기술력이 지배했다. 소니(SONY)와 같은 브랜드가 산업을 지배하던 시대. 그때는 제조업이 전성기였다. 물론 애플과 같은 유별난 기업도 있었다. 하지만 큰 맥락에서 1990년대는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였고, 따라서 누구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제조업이 모든 프로세스를 처리하고, 유통과 물류는 제조업을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점차 기술은 평준화됐다. 그리고 대규모 유통기업이 등장했다. 세상의 중심은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넘어갔다. 물론 제품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제조업이었다. 하지만 ‘기술 평준화’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을 갖춘 많은 기업에 제품을 만들 기회를 제공했고, 저렴하면서도 높은 품질의 제품을 빠르게 만들 수 시대를 열었다. 즉 유통과 ‘속도’가 만나 시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반응하고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2000년대에 세상은 다시 한번 변한다. 유통은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온디맨드(On-demand)’의 시대가 개막했다. 이 시대에 소비자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곳에서,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됐다. 기업이 아닌 개인도 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내고, 3D프린터 등을 통해 이를 스스로 제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용이 저렴한 생산국가에서 제품을 생산한 뒤 물류를 통해 국경을 넘어 이를 공급하는 게 가능해졌다. 제조에서 유통으로 넘어온 산업의 중심이, 소비자를 중심으로 하는 온디맨드로 넘어온 것이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리가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기준과 이를 소비하는 채널이 바뀌면서 물류 역시 변화하고 재해석이 필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 원가 경쟁에서 속도로

다시 제조업의 시대로 돌아가 보자. 그 시대, 물류의 핵심에는 대규모 재고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생산된 제품을 대규모로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원가 경쟁력이 중요했고, 규모의 경제가 중요했다. 물류 프로세스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들은 기능별로 ‘대형화’됐다. 무엇보다 제품 자체의 경쟁력이 중요했기에, 물류 기능은 파편화돼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원가 절감이 중요하다 보니, 물류가 전체 프로세스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았다.

하지만 유통으로 산업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변화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재고를 줄이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상품을 공급하는 게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즉, 기업의 핵심 경쟁력은 더는 ‘원가’가 아니라 ‘속도’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비로소 ‘물류’라는 개념이 꽃피기 시작한다. 물류의 핵심은 원자재 조달부터 최종 소비자에게까지 이르는 전체 프로세스를 하나의 관점에서 효율화하는 것이다. 이 무렵 창고 역시 물류센터(Distribution Center)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사실 ‘Distribution Center’를 번역하면 물류센터보다는 유통센터에 더 가깝다. Distribution이란 상품을 유통채널에 공급한다는 개념으로서, 이때 물류센터에는 컨베이어벨트가 들어서고, 스피드를 높이기 위한 각종 자동화 설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동대문 패션 풀필먼트 브랜디는 2019년부터 수요예측을 기반으로 상품을 선매입해 소비자에게 빠른 배송을 제공하는 ‘오늘출발’을 서비스 중이다. 출처: 아시아경제 _동대문 패션 스타트업도 ‘배송 전쟁’

●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이 풀필먼트

그런데 온디맨드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는 더욱더 게을러졌다.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력도 평준화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제품을 소규모로 ‘즉시’ 공급하는 것이 되었다.

온디맨드 시대에는 고객이 언제, 어디서, 어떤 제품을 주문할지 알 수 없다.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서비스 수준도 높아졌다. 지리적으로 분산된 곳에서 소규모 주문이 발생하거나, 한 번의 주문에 여러 상품을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 이와 더불어 불확실한 주문 시기와 더욱더 빨라진 납기 등은 전통적인 물류를 혼란에 빠뜨렸다. 요컨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속도가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의 서비스’이다.

여기서 ‘풀필먼트’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온디맨드의 시대, 고객의 복잡한 요구를 효율적으로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창고에 새로운 역할과 이름을 덧씌운 게 바로 풀필먼트 센터라고 할 수 있다.

아마존 마켓플레이스를 주도했던 존 로스만은 그의 저서 <아마존웨이, 2017>에서 아마존의 핵심 가치에 대해 ▲낮은 가격(Price) ▲다양한 상품군(Selection) ▲높은 가용성(Availability)을 꼽았다. 그는 이 세 가지 핵심 가치가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설립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원칙이라며, 이중 아마존 풀필먼트 전략을 높은 가용성을 만든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출처: 아마존

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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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편

비욘드엑스 대표. 인류의 먹고사니즘에 수많은 연결고리가 된 물류를 관찰하고, 시대마다 변화하는 공급망의 의미와 역할을 해석하는 일을 한다. 프리미엄 콘텐츠와 현장 전문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네카쿠배경제학」 저자로 국립 인천대 창업혁신교수와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