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 미래는 물류에 있는가?

: 라이프 스타일을 염탐하라

주유소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기름 냄새를 걷어낸 주유소에는 세탁소, 자전거대여점, 개인창고, 택배취급점까지 다양한 생활편의형 서비스로 채워지고 있다. 맥도널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나 스타벅스 커피점처럼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매장이나 편의점, 세차장, 자동차 정비업체의 등장은 이미 고전 같은 모델이 된 지 오래다.

얼마 전부터는 주유소가 쿠팡, 네이버 등 온라인 사업자들 사이에서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FC, Micro Fulfillment Center)로 그 활용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주유소는 안전 등의 이유로 소방법에 따라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는 대상이다. 하지만 규제 완화 움직임 속에서 다목적 이용공간으로서의 활용을 기대하고 있다.

●내연차의 종말, 변화의 시작

주유소 변화의 시작은 20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랜드마크였던 청기와주유소 자리에는 2018년부터 롯데 L7호텔이 들어섰다. 이곳은 SK에너지의 전신인 유공이 1969년 국내 최초로 세운 현대식 주유소(면적 2302.1㎡)로 2010년 초반까지 이 지역 만남의 장소로 통했다. 2013년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는 SK양평주유소는 지하 1층 자상 5층짜리에 패스트푸드점과 패션 브랜드가 입점한 국내 최초의 멀티브랜드 복합주유소로 이름을 올렸다.

얼마 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 재건축 현장 건너편에 있었던 폐업한 주유소는 철제 가림막을 벗고 병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천호동에는 주유소 부지에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을 만들 것이란 소식도 있다. 이제껏 주유소의 변화는 주유소 부지의 용도 변경(리모델링)이라 바꿔말할 수 있다. 이렇게 주유소가 바뀌는 것은 ▲시장포화 ▲경영악화 ▲대체 에너지 등장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주유소 업계는 구조조정 바람이 더 커졌다.

“SK, GS, 현대, 에쓰오일 4대 정유사 브랜드 주유소 개수는 2019년 1만 140개에서 2020년 9,992개로 줄었다. 2010년 기준 전국 1만 3,004개였던 것이 십년만에 1만 개로 밑돌았다. 전문가들은 적정 주유소를 8,000개 정도로 내다봤다. 코로나 여파로 차량 운행이 줄면서 국내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389억 리터)은 이전보다 3.7% 감소했다. 친환경 차 확대 추세도 주유소의 경영난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2020년 국내에서 팔린 자동차 가운데 전기차·하이브리드·수소차의 비중은 11.8%로 전년보다 4% 가까이 상승했다.” – 조선일보 <주유소 폐업 1년새 2배로> 2021.2.22

 주유소 사업은 수익성 악화로 폐업이 속출해 10년간 연평균 1.3%씩 지속적인 감소에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적정 주유소를 8,000개 정도로 내다보고 있는데, 2040년에는 2,980개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전기차는 2040년까지 10대 중 절반 이상으로 대체될 것이란 예상이다. 출처: 조선일보,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

●가스 스테이션에서 멀티 스테이션으로

최근 주유소는 전기차나 수소차 충전시설을 보강하고 있다. GM, 볼보 등 자동차 양산업체들이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의 생산 중단을 발표하면서 2040년까지 전 세계 대체에너지 차량의 보급률은 전체 58% 정도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자동차 가운데 전기차·하이브리드·수소차의 비중은 11.8%로 전년보다 4% 가까이 상승했다. 자동차 시장의 대변혁은 내연기관 자동차와 연결된 리테일 비즈니스인 주유소 변화 요인의 꼭짓점이다.

그렇다고 모든 주유소가 단숨에 탈바꿈할 수는 없다. 도로 위 10대 중 9대 차량은 여전히 휘발유와 경유, LPG로 움직인다. 그래서 주유소가 기름이 아닌 서비스를 팔기 시작했다. 부족한 실적을 메꾸면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주유소에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 세차장, 경정비, 택배취급점이 더 늘어나는 이유다.

“SK에너지는 주유소를 거점으로 하는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GS칼텍스는 올 초 CES 2021에서 주유소를 드론 배송의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쿠팡과 협업해 주유소 유휴 공간을 로켓배송의 물류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주유소에서 공유 전기자전거 대여·주차·반납·충전과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유소에 전기차·수소차 충전 시설을 확충하고 패스트푸드점·편의점까지 입점시키고 있다. 단순한 주유·세차·정비 공간이 아니라 복합생활공간으로 변모 중이다. 출처: GS칼텍스 블로그

●밸류체인은 라이프 플랫폼부터

이제 주유소는 가스 스테이션(Gas Station)이 아니라 ‘멀티 스테이션(Multi Station)’으로 불릴만하다. 단순히 기름만 넣는 곳이 아닌 차량관리나 세탁물, 택배를 취급하는 주유소의 복합생활공간 유형은 크게 4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①개인 창고(Self Storage)

주유소의 남는 공간을 창고나 개인사물함 등으로 개조해 빌려주는 서비스다. 아파트 등 주거 형태의 소형화로 집에 수납공간이 부족하거나 철 지난 옷, 캠핑 등 레저용품을 보관해야 할 때 사용할 수 있다. 1인 가구나 맞벌이 부부 등 인구 변화가 시장 기회 요인이 된다.

②택배 취급점

고객의 물건을 픽업해 주유소에 가져다 놓으면 택배사가 이를 수거해 목적지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주로 개인이 택배를 보낼 때, 택배기사가 집으로 개별 방문하지 않아도 돼 집하 효율성으로 높일 수 있다. 온라인 고객 입장에서는 제품을 빠르게 반품하거나 교환할 때 유용하다.

③모빌리티 거점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 서비스 거점으로 활용이다. 이동수단, 즉 사람들이 여러 가지 탈 것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유소의 특징을 살려 카셰어링 등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의 접점이 된다. 수거→정비→충전으로 이어지는 모빌리티 서비스 전초기지가 되는 셈이다.

④세차, 보험 등 차량관리

연간 2조 5,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출장세차나 손세차 공간으로도 주유소는 활용된다. 일반적인 터널형 세차와 달리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해 차량 관리에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고객들을 유치하는 게 목표다. 이외에도 주차, 정비, 보험 등 다양한 스타트업과 제휴로 정유사는 차량관리 통합 플랫폼 개발에도 관심이 많다.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처럼 주유 예약을 제공하는 것으로 차량 번호, 결제 수단을 등록해 놓으면 리워드가 적립되고 이는 세차, 보험할인 등 차량관리 서비스로 제공되는 구조다.

전기자전거, 전동퀵보드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 시장은 2020년 이용 건수가 117만 3,000건으로 전년보다(25만 4,000건) 362% 증가했다. 이용금액은 5억 3,000만 원에서 20억 원으로 280% 늘어났다. 출처: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KB증권 블로그

●유통업이 주유소를 만났을 때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주유소에 미래가 있는가? Is There a Future for Service Stations?>라는 보고서에서 새로운 이동 수단과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기술이 주유소 시대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품과 서비스, 네트워크, 비즈니스 모델을 2030년까지 모두 바꿔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유소는 어떻게 사업을 통째로 바꿀 수 있을까?

보스턴컨설팅은 주유소 시대의 종말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대체 에너지의 등장 등 3가지 이유를 꼽았다. 2030년까지 주유소가 제품과 서비스, 네트워크, 비즈니스 모델을 모두 바꿀 것을 경고하고 있다. 출처: BCG

온디맨드화(化) 되는 국내외 유통시장의 진영 변화와 비대면 경제의 확산에서 그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전통적인 유통업체들은 주유소를 비대면 픽업 센터로 눈여겨보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고객접점의 최전방기지로 주유소가 접근성이 좋은 데다 성장동력을 잃은 주유소로서는 새로운 가치사슬을 만드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닥뜨린다.

예를 들어 미국의 커브사이드 픽업(Curbside Pickup)은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품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지정 장소에서 전달받는 서비스이다. 쉽게 말하면 소비자가 자동차에 탄 채로 마치 드라이브 스루 형태로 마트 쇼핑을 하는 것이다. 커브사이드 픽업은 고객의 차량정보 및 차량 도착 정보를 매장 측이 핸드폰 앱을 통해 전달받고, 매장 직원이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차량 트렁크에 싣거나 또는 차량에 있는 고객에게 직접 전달한다.

미국의 식료품 리테일 기업인 타겟(Target)은 전국 1,500여 개 매장에, 스포츠용품 체인점 딕스 스포팅 굿즈(Dick’s Sporting Goosds)는 800여 개 매장을 폐쇄하고 곧바로 커브사이드 픽업 서비스로 대체했다. 이외에도 월마트와 베스트바이 등도 커브사이드 픽업 서비스를 도입 중이다.

커브사이드 픽업 서비스는 고객의 차량정보 및 차량 도착 정보를 매장 측이 핸드폰 앱을 통해 전달받고, 매장 직원이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차량 트렁크에 싣거나 또는 차량에 있는 고객에게 직접 전달한다. 주유소를 활용한 리테일 모델로 급부상 중이다. 출처: 커브사이드 픽업 서비스 & 베스트 바이  

●이커머스에게 주유소란?

아마존, 알리바바는 물론 쿠팡, 네이버 등 국내외 이커머스들은 도심형 주유소를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icro Fulfillment Center)와 마이크로 딜리버리 센터(Micro Delivery Center)로 눈여겨보고 있다. 쿠팡은 2년 전부터 현대오일뱅크와 로켓배송 거점으로 실험 중이다. 네이버는 NFA(Naver Fulfillment Alliance)를 중심으로 전략적 투자관계에 있는 풀필먼트 스타트업들과 다양한 공간에서 물류 기능을 전면에 내세울 복안이다.

아마존은 2019년부터 주유소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아마존의 무인 편의점 ‘아마존고(Amazon Go)’나 무인택배사서함 ‘아마존 락커(Amazon Locker)’ 등 오프라인 매장 확대 전략과 맞물려있다. 2021년까지 매장을 3,000여 개로 늘려나갈 계획인 아마존은 주유소 사업 자체만으로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데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의 고객수도 늘릴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아마존이 확보한 주유소를 통해 수천 개의 오프라인 배달 및 운송 거점을 손쉽게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이 인수한 자율주행자동차 스타트업 기업 ‘죽스(Zoox)’를 통해 모빌리티 스테이션으로도 점칠 수 있다.

이외에도 알리바바는 2015년 중국석유화학 주유소 중 5,000곳을 인수했다. 주유 결제를 알리페이와 연동하고, 각종 O2O(Offline to Online) 서비스의 오프라인 거점으로 연결 중이다.

아마존이 주유소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는 아마존의 무인 편의점 ‘아마존고(Amazon Go)’나 무인택배사서함 ‘아마존 락커(Amazon Locker)’ 등 오프라인 매장 확대 전략과 맞물려있다. 출처: 아마존

●홈픽 사례로 본 장밋빛 전망의 이면

이처럼 주유소는 사람과 화물 이동의 중심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매개제가 된다.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주유소는 차량 운전자만 가던 곳에서 생필품을 사고, 택배도 찾고, 각종 퍼스널 모빌리티를 대여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주유소라는 이름은 바뀔 수 있을지언정 그 활용도는 더 높게 점쳐진다.

그렇다고 주유소의 미래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SK에너지가 야심 차게 선보였던 주유소 택배 서비스인 ‘홈픽(줌마)’은 올 초 서비스를 접었다. SK가 지난해 인수한 이커머스 물류플랫폼 굿스플로가 홈픽을 흡수하는 모양새지만 사실상 매각이 이뤄진 셈이다. 홈픽은 SK에너지가 창립한 이래 처음 출자한 물류스타트업이었다. SK가 홈픽의 서비스를 차세대 상생모델로 내세울 만큼 전사적으로 홍보와 마케팅을 지원해 화제를 모았다. GS 허태수 회장이 SK 최태원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GS칼텍스에서도 홈픽 서비스를 같이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후문이 있었을 정도다. 그랬던 홈픽이 B2B 택배사업의 실적악화와 적자누적에 발목이 잡혀 사업을 포기했다. 현재 굿스플로에 흡수된 홈픽은 개인택배 집하만 주력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올해 CES 2021에서 ‘미래 주유소 변화’에 대한 청사진을 공개했다. 회사가 공개한 동영상을 요약하면 ‘주유소 거점 드론 배송’이다. 우선 드론과 로봇을 결합해 편의점 상품을 멀리 배송하는 것과 육지에 먼 도서지역에 음식을 배달한다거나 바다 위에 있는 선박에 물건을 전달한다는 시나리오다. 이외에도 앞서 나열한 전기·수소차 충전, 카셰어링, 마이크로 모빌리티 등 다양한 물류 거점으로 활용되고 향후 드론 격납·충전·정비, 드론 택시 승하차장 등 미래 모습이 담겼다. 물론 성공 여부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계획이 아닌가?

주유소 택배서비스인 홈픽이 사실상 서비스를 중단했다. SK에너지가 창업 이후 처음 출자한 스타트업으로 SK 최태원 회장이 혁신적인 상생모델로 꼽을 만큼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출처: SK에너지

●주유소 더하지 말고 덜어내자

국내 정유사들이 내놓은 주유소의 미래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그 이유는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압박과 조급함에서 기인한다. 또 ▲주유소 자체 수익모델 부재 ▲공간 임대형 모델 한계 ▲서비스별 거점 분석 오류 ▲사용자 관점 공간설계 부족 등 애초에 가진 문제가 복잡하다. 몇몇 스타트업과의 업무제휴나 생활편의형 서비스를 무작정 늘리는 것으로 미래 주유소의 사업모델이 확 바뀌거나 수익성이 개선될 수는 없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혁신에 대해 ‘더하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Deciding what not to do is as important as deciding what to do(무언가를 하지 않도록 결정하는 것이 무언가를 하도록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 필자의 의역으로 더 좋은 번역은 독자에게 맡긴다.

혁신할 때 제품과 서비스에 무언가를 자꾸 더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뒤 처음 했던 일은 기존에 복잡했던 제품 라인업을 노트북과 PC로 단순화한 것이었다. 제품 디자인도 더 무언가를 뺄 수 없을 만큼의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오죽하면 잡스는 “혁신은 무언가를 더 더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더 뺄 수 없는 상태까지 가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과거 주유소의 변화가 리모델링, 증축 등 무언가를 더 더해 임대 수익률을 올리는 것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우리 일상생활을 바꾸는 공간으로 재해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소비자가 기대하는 주유소의 벌어진 간극을 메우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주유소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라이프 스타일을 염탐하라.

GS칼텍스가 미국 최대 가전전람인 CES 2021에서 발표한 미래 주유소의 모습에는 드론과 로봇을 활용한 배송 거점으로 물류 전초기지 역할을 담고 있다. 출처:GS칼텍스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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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기술의 진화보다 생활의 변화에 더 민감합니다. 유통, 물류, 모빌리티 관점에서 사람과 상품의 가치 있는 이동과 공급망 변화가 이끄는 '라이프 플랫폼' 시대를 관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