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어떻게 위대한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나?

지금은 전세계적인 판데믹으로 여행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테러가 여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일 때가 있었다. 이집트 여행 역시 테러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다가 2018년 즈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이집트 여행을 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교통수단을 체험할 수 있다. 카이로 공항까지 비행기로 이동하고, 카이로부터 이집트 남부 아스완까지는 야간 기차로 (무려 승무원이 총을 들고 있는 1등급 기차다) 이동할 수 있으며, 아스완부터 카이로까지는 숙소가 딸린 소형 크루즈선을 타볼 수 있다. 마차는 물론이거니와 돈을 내면 낙타도 타볼 수 있는 곳이 이집트다. 그리고 나일강에서는 이집트 전통 무동력 배인 ‘펠루카’도 타볼 수 있다. 

역사는 물류와 함께 한다

피라미드, 스핑크스, 장제전, 멤논의 거상, 네페르타리의 무덤 그리고 오벨리스크. 이런 건축물에 사용된 공통된 자재가 바로 ‘석재’다. 이들은 이 석재를 어떻게 운반했을까? 도시 인근에 채석장이 있었다면 좀 더 쉬웠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집트에 채석장은 아스완이라는 이집트 남부의 도시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는 물류하기 딱 좋은 자연 조건이 있었다. 

① 아스완이라는 이집트 남부의 도시에서부터 기자의 대 피라미드가 있는 카이로까지는 나일강으로 연결되어 있다.

② 마침 나일강은 아스완부터 카이로로 흐른다. (나일강은 적도에서 북극 방향으로 흐른다)

③ 나일강은 주기적으로 범람했는데 범람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강의 수위가 높아졌다. 물의 수위가 높아진다는 것은 채석장과 가까운 곳까지 배가 이동할 수 있었다는 뜻이고, 배가 가깝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력이 덜 투입되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④ 강 인근에는 모래가 많다. 모래는 이집트 건축에 중요한 재료다.

⑤ 이집트에는, 특히 나일강 인근으로는 산이 별로 없다.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남은 것은 석재를 운반하는 물류다. 채석장에서 다듬어진 석재를 나일강 범람 시기에 펠루카와 같은 배에 실어 받고자 하는 도시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도착해서 석재를 배에서 내린 뒤, 모래와 나무 기둥, 밧줄을 이용해 끌고 가기만 하면 되었다. (말은 쉽게 써놓았지만 나보고 하라면 못한…)

그런데 오벨리스크는 어떻게 운반한 것일까?

하늘로 높게 솟아오른 오벨리스크는 지금 이집트보다 이집트 외부의 국가에 더 많이 있는데 몇개는 선물로, 몇개는 강탈 당했다. 오벨리스크는 단 한개의 돌로만 만들어져야 해서 조각내서 운반할 수도 없었다. 지금이야 기중기와 같은 것을 이용하여 운반하면 된다지만 그 옛날에는 어떻게 운반했을까? 

이 역시도 배를 이용해서 운반했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외부 링크에서 참조) 배 위에 오벨리스크를 얹어서 날랐다고 하는데 이 방법 말고는 달리 나를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벨리스크의 무게가 무거운 것은 200톤이 넘는다고 하는데 배가 이를 견딘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고 배 위에 오벨리스크를 얹은 것 역시 신기한 일이다.

배 상판의 중앙에 가로로 놓여 있는 것이 오벨리스크다.

비교적 근래에 옮겨진 오벨리스크는 뉴욕시에 세워진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오벨리스크라 한다. 이 역시 200톤 가까이 되었고 Dessoug 라는 배 하단에 넣는 방식으로 오벨리스크를 넣는 방식으로 선적했다고 한다. 이때가 1879년이었는데 고대 이집트가 멸망한지 거의 이천년이 지난 후다. 그리고 배에 오벨리스크를 넣어 출항하기까지는 무려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출처)

지금의 기술은?

피라미드가 만들어진지 약 4500년이 지난 지금은 비행기로는 상어와 고래까지 나를 수 있고, 산 꼭대기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물류 기술이 발전하였다. 지금은 프로젝트 물류나 초대형 운반물을 어떻게 날랐는지 궁금하면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유조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 선을 만드는 것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있기까지 하다.

물류는 이처럼 고대와 현대의 역사와 함께했고, 역사는 물류와 지속되었다. 이집트가 위대한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를 감히 물류라고 이야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