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본 공급망 불안 “우리만 힘들까?”

일단 지금, 이 순간에도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밤낮없이 애쓰고 있는 수많은 분들의 노고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1993년, 일본의 한 게임 개발자(무서운 것을 싫어하는) 하나가 입사 3년 차에 무서운 게임을 만들어 보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는다. 1990년대 일본 회사 분위기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맨땅에 헤딩하며 만든다. 입사 3년 차 게임 개발자가 만들면 얼마나 만든다고. 회사 안에서도 내놓은 자식 취급했다. 20만 장이나 팔면 다행이라고 여겼다. 1996년, 우여곡절 끝에 1탄이 일본과 미국에 출시되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출시 후 500만 장이 팔리면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게임팩 중 가장 많이 팔린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2018년 기준 8,0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사람에 따라서는 ‘레지던트 이블’로 알려진 게임 개발사 ‘캡콤’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이렇게 신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96년 출시된 바이오 하자드 오리지날

그야말로 생물재해, ‘바이오 해저드’다. 불법으로 취급되던 야생동물을 먹어서 감염은 시작되었고 2월 5일 22시 현재, 중국에서만 2만 5천 명이 감염되었으며 500명 가까이 사망했다. 오염된 손으로 눈을 비비기만 해도 감염된다고 하며, 이제는 숫제 우한에 있는 중국과학원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가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괴소문까지 나왔다. 기억하시려나 모르겠다. ‘바이오 하자드’ 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영화이자 2002년 개봉하여 여전사 영화의 전형을 만든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설정이 이거다. 지하 연구소에서 연구 중이던 바이러스를 연구소 안에 깨트려 퍼지게 만들고 이상을 감지한 연구소는 자동으로 폐쇄되었지만, 생존자를 구하러 갔던 이들이 연구소를 다시 가동함으로써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줄거리. 어제도 오늘도 거리에 넘쳐나는 마스크 쓴 군중을 보며 새삼스럽게 섬뜩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기분일까? 지금은 사람에 따라 안 걸릴 수도 있는 바이러스라고 하지만, 만약 지금의 재해가 예외 없이 사람을 치사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다른 오염원이라면? 상상만 해도 싫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서 연구소에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바로 이 장면!

이런 상황에서는 공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증오와 분노의 대상을 일부러 만드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거라고 겁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중국이 마스크를 싹쓸이 해간다며, 중국이 돈다발을 들고 와서 마스크를 웃돈 주고 다 사 간다며 중국을 적으로 돌리려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말이 나온 김에 마스크 얘기 조금만 하자. 중국을 적으로 돌리려는 이들이 아직도 하는 이야기, ‘우리나라 정부가 자국민도 쓸 마스크가 모자라는데 중국에 마스크 300만 개를 보냈다.’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아무리 ‘민간에서 보냈다, 정부는 항공운송비만 댔다’고 해도 안 믿는다. 우리는 물류와 서플라이 체인 전문가를 꿈꾸고 있으니까 그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300만 개라고 하면 무척 많아 보이는데 정말 그럴까?

아래 사진을 보자.

많이도 사 간다. 퓨어 에어밸브 황사 방역 마스크면 모나리자 거다. 바로 이거다.

보통 온라인에서는 10개 들이 한 상자다.

바로 위에 보는 퓨어 에어밸브 황사마스크의 Inbox. 10개가 들어 있다.

다시 그 위의 사진을 보면 Inbox 25개가 한 상자에 들어가 있고 그런 상자가 12개가 있다고 나온다. 만약 한 상자에 들어 있는 상자가 저 10개 들이 상자라면 10개 X 25개 = 250개, 250개 X 12개 = 3,000개. 즉 저 중국 여자가 끌고 가는 카트에 실린 마스크 상자 하나는 3천 개의 마스크가 들어 있던 셈이다. 실제 다른 마스크도 잘 보면 저만 한 상자에 최소 1천 개 이상은 들어간다. 저만 한 상자면 표준 팔레트에는 3단 적재 X 단마다 4상자로 12상자를 실을 수 있을 것이다. 상자가 좀 커 보이니 단마다 3개 상자로 보자. 팔레트 하나에 27,000개의 마스크가 실린다. 보통 40피트 컨테이너 한 상자에 팔레트 20개 정도 실린다고 보면 컨테이너 한 상자에는 54만 개의 마스크가 실린다. 어차피 중국 사람들이 덜 감염되어야 우리도 빨리 극복할 텐데 40피트 컨테이너 6상자의 마스크를 실어 보낸 것이 자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뭐 더 반박하지는 않겠다.

실제로 중국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마스크를 가져가는 이유는 중국인들의 뿌리 깊은 자국 제품 불신 때문이다. 실제 가짜 분유 파동 당시 (남중국에서는) 홍콩 가서 분유를 쓸어 담아 왔던 것이 중국인들이다. 중국의 바이러스 감염이 너무 심각해서 자국 공장에서 만든 마스크도 감염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더욱더 한국산 마스크를 찾는다고 한다. 오히려 공급망 관점에서 보면 마스크를 사러 돈다발 들고 오는 중국인들 보다 가운데서 자국민을 우롱하듯 돈 더 주는 판매상에 더 많은 마스크를 할당하는 도매상의 장난이 더 나쁘지 않을까? 실제 지금, 이 순간에도 마스크를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상인들은 마스크를 제때 공급은 못할지언정 가격을 크게 올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필자도 근처 편의점에서 평소 가격인 2,200원 주고 오늘 마스크를 하나 샀다. 오히려 지금 가격을 올리는 부류는 한번 팔고 끝내 버리려는 사람들일 가능성도 있다. 아래 캡처를 보자.

흑우는 어수룩한 사람, 한마디로 호구를 말한다. 요즘 세상에 마스크 사재기 안 하면 xx이라는 뜻이다. 한국 사람이 쓴 글 맞다.

물론 구매의 본질은 쌀 때 많이 사 놓고 비쌀 때는 팔아서 남기기도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모두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마스크를 구하는 시기에 적절하게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지 못하는 주체와, 돈벌이로 활용하는 주체, 그리고 그것을 적으로 돌리고 공포를 조장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주체 모두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사실 공급망의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뉴스에 나왔듯이 이미 현대자동차가 중국산 부품의 수급 문제로 생산을 중단했다. 이것도 일부 언론은 한국 경제의 엄청난 위기라며 공포를 조장한다. 하지만 말이지. 이미 이런 공포는 전 세계가 느끼고 있다. 포털은 사람들이 많이 조회하는 뉴스만 나와서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이미 애플도 중국에서 스마트폰 생산을 못 하고 있다. 애플의 경우 작년 일정대로 9월에 신(新)모델이 나오기 때문에 지금쯤이면 시제품 생산을 해야 하고, 그전까지는 아무튼 경쟁사와 경쟁 가능한 제품을 내놓아야 해서 지금쯤 보급형 모델을 출시한다. 실제 2016년에 나왔던 아이폰 SE의 차기작이 3월 출시 예정이고, 2월에 생산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업계에서는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보급형 휴대전화기의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으며 미국 직원들이 중국에 출장을 못 감으로써 9월 출시할 주력 모델의 개발 진척과 시제품 생산이 얼마나 차질을 보이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애플은 지난 2월 4일 1/4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현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이슈가 2/4분기 실적 예상에 반영되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애플 뿐 만이 아니다. 스타벅스는 중국 매장 4천 곳 중 절반을 닫았고, 아예 우한에 매장이 있던 이케아도 우한 매장을 닫은 지 오래다. 도요타자동차는 다행히 우한 인근에 공장이 없지만, 우한 인근에 공장을 둔 GM, PSA, 혼다 등은 공장을 닫은 것은 물론 바이러스가 진정된다 해도 정상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중국의 어느 공급업체 소재지에 바이러스가 창궐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컨대, 공급망의 대혼란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일찌감치 많은 제조기능을 중국에 경쟁적으로 이전한 나라에서 뭘 기대하고 싶은가?

이런 상황에서는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빨리 회복할 것인가, 그리고 다음에 이런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실제로 애플의 경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부품업체들의 공급이 끊기면서 당시 아이패드 2 판매에 영향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듀얼소스 전략을 써 왔고, 폭스콘이나 페가트론 등 완제품 조립업체의 부품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현재 중국 생산능력의 15~30%를 동남아로 이전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애플의 중국 의존도가 그리 쉽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또한 애플의 평소 공급망 관리 능력으로 보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2월 중순까지 진정되면 애플의 공급망은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며, 2월 말에서 3월로 넘어가면 그때는 분명 애플의 매출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폭스콘과 페가트론의 공장은 우한에서 고작 500㎞ 남짓 떨어져 있다. 설령 바이러스가 진정된다 해도 그 큰 공장을 방역하고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는, 오염 안 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그것도 능력이다.

우한시에서 북동쪽에 정저우시, 동쪽에 상해시가 있다. 폭스콘과 페가트론 공장이 있는 곳이다. 생각보다 안 멀다.

‘현대자동차가 생산을 멈췄다’는 소식만 자꾸 들려주면 사람들은 공포심을 느낀다. 우리는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이다’를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필요할 때 대응할 수 있을까? 못한다. 그래서 평소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중요하다. 막상 글을 쓰다 보니 정말 쓰고 싶었던 인 쇼어링(in-shoring) 얘기를 못 썼다. 이 주제는 기회 되면 다시 써 보겠다.

군 복무를 하며 물류에 뜻을 둔 이후 제조업체 IT일을 하며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중. 은유와 위트 넘치는 독특한 필체와 외부강의 경험으로 더 생생한 물류와 공급망 관리의 세계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는 은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