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빵집과 라스트마일

산간벽지 마을도 당일배송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외할머니는 시골에서 빵집을 운영하셨다. 그 빵집이 위치한 자리는 원래 약국이 있었다. 약사셨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할머니는 빵을 직접 만들어 팔지 않으셨다. 시내에 있는 큰 제과점에서 단팥빵, 소보루, 크림빵 등을 받아 얼마의 마진을 얹어 파신 것이다.

매일 새벽 시내 제과점에서 만들어진 빵은 바로 옆 버스터미널로 보내진 후 할머니 집까지 아침마다 관내 버스로 배달됐다. 정읍 시내에서 출발해 신태인 읍내를 거쳐 감곡면사무소까지 한 시간 좀 넘게 달려온 것이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던가? 외갓집에 갔을 때,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면사무소 앞 정류소로 빵을 받으러 나간 적이 있다. 십여 분 기다렸을까, 도착한 버스 뒷문이 열리자 흰 장갑을 낀 기사님이 나타났다. “네가 약방 집 손자여?”, “네” 숫기 어린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라면박스 한 개가 손에 쥐어졌다. “흔들지 말고 잘 들고 가~” 버스 기사 아저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캐한 배출가스와 흙바람을 일으키고 어느새 떠나버렸다.

● 36년 전과 바뀌지 않은 시골 버스 정류소 풍경

얼마 전 전라남도 장흥에 다녀왔다. 가을 억새로 장관인 천관산 능선이 보고 싶어 버스터미널에서 첫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한 어르신이 전기밥솥을 들고 오시더니 버스 운전석에서 제일 가까운 앞자리에 올려놓으셨다.

버스에 올라탄 기사님은 물건을 확인하더니 아무런 대화도 없이 시동을 켜셨다. 버스에 실린 전기밥솥은 나를 이어 두 번째 손님이었다. 덜커덩~ 터미널을 출발한 관내 버스는 최종 목적지인 회진으로 향했다.

천관산 입구에서 내려야 했기에, 그 전기밥솥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상상하건대 대한민국 맨 아래 정남진에 사는 누군가가 밥솥이 급하게 필요해 가장 빠르게 받아보는(또는 보내려는) 방법을 찾다 군내 버스를 이용할 생각을 했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밥솥을 용달로 보내긴 비쌌겠고, 촌골에 이륜차 퀵서비스가 있을 리는 만무할 테고, 그렇다고 비싼 택시를 태워 보내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 테다. 그 생각이 스칠 무렵, 36년 전 면사무소 앞 정류소에서 빵이 담긴 박스를 건네받은 어린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목격한 군내 대중교통을 이용한 버스 택배(당일배송). 여객운송을 활용한 유료 운송행위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그러나 일반 택배 사업자의 서비스가 미치기 어려운 산간벽지나 오지에서는 하루 몇 차례 운행되는 버스를 활용해 화물이 운송되고 있다. 출처: 필자가 여행 중에 직접 촬영.

● 보편적 물류 서비스와 배송 사각지대

주문하면 30분 내 음식 배달이 가능한 서울과 달리 전국 읍·면 단위의 마을 중에는 아직도 이틀 내 택배 서비스가 불가한 지역이 많다. 신안 앞바다의 수많은 작은 섬이 몰려있는 도서 지역이나 강원도 영월·정선, 경북 봉화·울진 등 산골 마을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국민 1인당 연간 택배 이용 건수 65.1개(경제활동 1인당 122건). 일상생활의 보편적 서비스로 자리를 잡은 택배가 전국에 미치지 못하는 ‘물류 사각지대’가 있다. 시간 내 배송이나 당일배송은 상상도 못 하는 곳들이다. 민간 택배사들이 배송하지 못하는 지역은 공기업 우체국 택배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지만 그 업무강도는 높고, 수익 보전은 낮아 걱정이 많다. 더욱이 서울이나 시골이나 배송인력이 모자란 것은 마찬가지다.

● 갈수록 설 자리 잃는 시골 택배

과거 시골은 철도 소화물이나 정기화물, 소포우편 등이 비교적 활성화됐다. 그러나 도심 이주 현상과 간이역 폐쇄, 물량 감소에 따른 적자를 이겨내지 못하고 지역 내 물류 사업자들이 설 곳은 빠르게 줄어갔다.

그나마 버티던 사업자들은 CJ대한통운, 롯데택배, 한진택배, 로젠택배 등 대형 택배사의 대리점이나 가맹점으로 편입됐지만 이른바 돈 안 되는 ‘시골 똥짐(농산물 등 비정기, 비정형 물량)’은 잘 취급하지 않는다. 본사의 취급지침이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마운 것은 시골 대리점들이 각자의 물량만 소화하는 것이 아닌 여러 택배사의 물량을 함께 처리해 배송이 힘든 ‘오지(奧地) 배송’을 돕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사는 지방 영업소나 대리점이 타사의 물량을 함께 배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불허하고 있다. 사고 예방, 면책 사유 등 여러 이유가 있을 테다.

국내 택배시장 물동량 추이.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거래와 비대면 경제의 활성화로 택배 이용률이 더 급증하고 있다. 출처: 조선비즈, 한국통합물류협회

● 버스와 택시가 택배를 나르는 실험

4년 전 일이다. 가까운 일본은 2017년 9월부터 버스와 택시를 이용한 화물 운송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정부가 택배를 비롯한 물류 업계의 심각한 인력난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그동안 일본도 한국처럼 여객 운송의 안전 확보를 위해 버스와 택시는 승객, 트럭은 화물 운송을 분리해 맡도록 했다.

국토교통성은 화물자동차 운송사업법과 도로교통법상 관련 규제를 완화해 여객을 수송하는 버스라도 허가를 받으면 전국 어디든 화물을 수송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이 규제 완화를 주창한 곳이 바로 일본 최대 택배사 ‘야마토 운수’라는 것이다.

야마토는 정부의 규제 완화에 앞서 2년 전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한 배송 실험을 해왔는데, 미야자키 교통이 보유하고 있는 노선버스를 이용해 야마토가 자사 물류거점에서 버스에 화물을 싣고 오면 도착한 정류소에서 야마토 직원이 택배를 받아 최종 배송지로 배달하는 방식이다.

택시와 전세버스에 대한 규제도 완화해 그동안 허용하지 않았던 화물 운송을 인구 과소지역(過疏地域)만 허용했다. 과거 25년간 인구가 20% 이상 감소한 지역 등을 대상 지역으로 과소지역의 교통인프라 악화를 막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물류 업체는 자사 트럭을 이용한 수송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고 버스회사는 물류 업체에서 운송요금을 받는 방법으로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오지 등 시골 노선 유지와 물동량 유치에도 서로 도움이 됐다.

이커머스 수송(택배)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터미널 운영이 간소해지고 택배차량이 아니어도 일반차량이나 여객운송차량을 활용해 택배를 보내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 중에 있다. 출처: 인터스탁

● 온라인은 도심과 시골을 구분하지 않는다

온라인 거래, 즉 이커머스의 급격한 성장으로 물류 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늘어난 물동량을 처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서비스와 고객 니즈의 다변화도 한몫 거들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온라인 거래는 도심과 시골 지역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바로 상품 유통의 ‘전국화’, ‘전 세계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택배 등 배송 서비스는 도심보다 상대적으로 지역 등 시골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 똑같은 제품을 구매하면서 더 비싼 운송료를 지급해야 함에도 말이다.

국내 물류 시장은 배송 인력과 운전사 부족에 직면하고 있다. 앞서 일본의 사례처럼 인구의 고령화 속도가 빨라 인력 수급의 어려움은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지역 서비스를 포함해 이용 가능한 모든 교통수단을 선택지에 넣고 과정의 간소화를 위해 물류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택배센터를 통해 추려진 물품을 택배 운송 차량뿐만 아니라 버스나 택시, 그리고 일반인까지 참여해 택배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소프트뱅크는 소화물 일반인 배송사업을 하는 CBcloud와 화물운송 사업 제휴를 체결했다. 1만 2,000여 명의 일반인 배송이 참여하는 CBcloud의 배송 시스템에 소프트뱅크의 플랫폼과 솔루션을 덧씌우고 있다. CBcloud의 일반인 화물 운송 최적화 기술과 소프트뱅크의 드라이버 매칭 플랫폼이 효율화를 이루는 작업이다.

이커머스 활성화로 물류 효율화를 위한 노력이 산업계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모빌리티 시장이다. 모빌리티 기업들은 드론, 배송 로봇은 물론 IoT·AI 등을 활용한 새로운 운송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있다. 어떤 업체는 드론으로 트럭이 가기 힘든 장소에 배달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또 다른 어떤 업체는 대중교통과 협력해 버스, 택시 등을 이용해 공유형 택배 시스템을 개발 중이기도 하다.

생각해본다. 온라인화와 비대면 경제의 시대, 대중교통 노선은 전국 산간벽지 오지마을에 당일배송을 제공할 수 있을까? 온라인 상거래가 일상화된 생활 속에서 도시와 시골을 구분할 것 없이 보편적 물류 서비스 제공과 사각지대의 소외됨을 살펴봐야 할 때다.

국내 전국 당일배송의 원조 고속버스 소화물운송. 여객을 운송하면서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유일한 교통망 공유 인프라이다. 출처: CLO

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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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편

「네카쿠배경제학」저자. 비욘드엑스 대표. 인류의 먹고사니즘에 수많은 연결고리가 된 물류를 관찰하고, 시대마다 변화하는 공급망의 의미와 역할을 해석하는 일을 한다. 프리미엄 콘텐츠와 현장 전문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립 인천대 창업혁신교수와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한국로지스틱스학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