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은 디폴트가 아니다” 택배비 인상에 대한 단상

: 소상공인을 위한 물류는 없다

택배비가 올랐다. 업체마다 인상 폭은 다르지만, 화물의 크기별로 150~250원부터 시작된다.

CJ대한통운은 이달 1일부터 250원을, 롯데는 지난달 중순부터 150원, 한진도 이달부터 150원 수준에서 운송요금 인상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세 변의 합이 80cm, 무게는 2kg 이하인 소형 상자로 기업 간 택배에 해당하며, 개인 간 택배는 이번 인상에서 제외됐다.

운송료 인상 소식에 네이버, 쿠팡, 11번가, 지마켓 등 오픈마켓에 입점한 판매자들도 이달부터 택배 요금을 100~200원 수준으로 이미 올렸거나 곧 올릴 것으로 보인다. 2~3만 원 이상 구매 시 무료 택배를 제공하는 판매자들의 가격정책도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얼마나 어떻게 인상됐나

CJ대한통운은 소형 상자(A형, 세 변의 합이 80cm, 무게는 2kg 이하)에 대해 기존 1,600원에서 1,850원으로 250원 인상했다. 이보다 큰 B형 상자(100cm, 무게 5kg 이하)는 1,800원에서 2,100원으로 300원 올랐다. 물론 이 기준 적용은 업체마다 다르다. 계약요금이 A형 기준으로 2,500원인 업체는 2,750원으로, B형이 2,900원에서 3,200원이다. 이처럼 기본운임의 시작 단가가 다른 이유는 업체마다 계약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에 취급하는 물동량이 많을수록 운송료가 낮아지는 구조다. 이외에도 C, D, E, F형으로 분류되는 상자(‘이형 화물’ 포함)도 크기에 따라 택배 운임 인상 폭이 더 커졌다.

롯데, 한진도 CJ대한통운이 적용한 기준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후발주자라 1위 CJ대한통운보다는 50원 더 싸게 책정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CJ대한통운은 4월1일자로 택배 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이번 택배 인상은 화물의 크기(부피)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시크리스의 투자생활”

●인상 기준의 핵심 ‘부피’

올해 택배비 인상 기준의 핵심은 무게보다 ‘부피(크기)’다.

택배사들이 취급하는 A, B형 크기의 상자는 전체 택배 물동량에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택배사의 수익성 개선과 직결되는 품목이라는 말이다. CJ대한통운이 운송료 인상 기준으로 세 변의 합이 80cm 이하, 100cm 이하 등 A부터 F형까지 화물(상자)의 크기를 내세운 이유다.

DHL이나 UPS, FedEx 등 해외 택배사들은 오래전부터 국내외 운송료 과금 기준을 부피와 중량으로 적용하고 있다. 최근 야마토나 사가와큐빈 등 일본 택배사들도 15kg 미만의 화물에 대해서는 그 크기에 따라 6단계로 나누어 택배 요금을 세분화하고 있다.

●이왕이면 과금도 과학적으로

배달 기반의 우편 서비스는 불과 몇십 그램 안 되는 종이봉투를 소형부터 대형까지 크기에 따라 요금체계를 적용한다. 더욱이 한 해 택배량이 우편량을 훨씬 웃도는 현실을 고려하면 우편보다 더 다양한 화물을 취급하는 택배는 부피에 더 큰 과금 요소를 가지고 있다.

택배가 화물의 크기에 따라 과금 방식을 차등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1.5t 택배 차량에 화물을 얼마나 실을 수 있느냐의 기준이 화물의 부피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반 트럭에 화물을 얼마나 더 실을 수 있느냐는 상자(포장)의 규격화에 따라 달려있다. 그러나 비용 절감과 적재 효율성은 트럭당 화물이 얼마어치가 실리느냐에 따른다.

예를 들어 택배사가 취급 상자 한 개에 무게를 15kg으로 제한해보자. 부피가 큰 상자보다 작은 상자가 더 많이 실리면 더 큰 이득이 된다. 택배사나 택배기사는 단 한 건의 배송을 더 하게 되면 그만큼 이윤을 더 챙기게 마련이다. 물론 화물차는 동일한 조건으로 적정중량을 지킨다는 조건에서다.

●가격담합 논란을 벗은 이유

일제히 거의 모든 택배사가 가격 인상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가격 담합’ 논란이 없다.

정부 여당이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사회적 합의 기구에는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이외에도 공정거래위원회를 참여시켰다. 택배사들이 요금 인상을 ‘요금 정상화’로 내세우며 일제히 가격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

택배사들은 택배비 인상으로 거둬들인 이익으로 ▲택배 산업 미래 대비하기 위한 투자재원 확보 ▲택배 종사자 근로 및 업무 환경 개선 ▲택배 종사자 소득향상을 위해 쓰겠다는 계획이다.

요금 인상이 실제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과 연결될지 하는 운영상의 문제는 우선 논외로 하자. 현재로선 약속에 대한 이행을 지켜보는 게 순서다. 소형 상자 한 개에 250원씩 인상을 적용하면 CJ대한통운의 연 매출은 4,600억 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CJ대한통운 등 택배사들은 택배비 인상으로 거둬들인 이익으로 ▲택배 산업 미래 대비하기 위한 투자재원 확보 ▲택배 종사자 근로 및 업무 환경 개선 ▲택배 종사자 소득향상을 위해 쓰겠다는 명분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시크리스의 투자생활”

●소상공인을 위한 택배는 없다?

택배비 인상으로 시장 안팎이 어수선하다.

올해 2월 말 택배 계약을 체결한 A 업체(온라인 사업자)와 CJ대한통운 B 대리점은 본사의 일괄적인 택배비 인상에 따라 계약을 다시 체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A 업체는 사전에 통보 없는 운임 인상에 따른 계약 조정은 불가하다는 태도이어서 B 대리점은 1년 치 택배비를 고스란히 보전해줘야 할 처지다. 또 다른 풀필먼트 C사는 다음 달 계약이 끝나기 전에 얼마라도 더 싼 중소형 택배사를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 이들도 택배비 인상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물량이 적은 소상공인들은 택배사를 상대로 가격 협상력이 없기 때문에 더 힘들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택배비 인상이 네이버나 쿠팡의 풀필먼트 사업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NFA)나 쿠팡 풀필먼트 서비스(CFS)에 입점한 판매자들은 네이버나 쿠팡이 대신해 택배사를 대상으로 가격 협상에 나설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처럼 보이지만 입점 판매자인 소상공인들은 향후 네이버나 쿠팡에 더 종속될 수도 있다. 네이버가 소상공인(SME)을 위한 물류 경쟁력 확보에 나서겠다면 CJ나 신세계 등 대기업들과만 손잡아서는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

●투명성, 해결해야 할 과제

이커머스 시장의 활황으로 택배는 물론 이륜차 등 마이크로 딜리버리 시장의 포문이 열렸다.

이번 택배비 인상은 음식배달 등 이륜차 시장에도 파급력이 예상된다. 운송료 인상에 앞서 업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소비자들이 합리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운송료 과금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택배 2,000원부터, 음식배달 3,000원부터, 퀵은 8,000원부터 등 공급자들이 그동안 내세운 요금 체계에 대한 투명성 제고다.

과거에는 거리 기준의 운송료 책정에서 앞으로는 적정 운임을 산출하기 위해 매우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왔다. 박스로 옮기는 택배와 달리 비닐봉지째로 배달되는 음식 배달료가 다르고, 배송 시간에 따라 30분 내, 2시간 내, 반나절 내, 당일 또는 익일 내에 따라 또 달라야 한다. 배송할 상품이 비싼 건지 싼 건지 그 종류에 따라 다 달라야 하는 건 상식이다.

제품도 온라인에서 가격을 비교하듯 배송도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택배나 배송은 ‘디폴트(Default)’가 아니다.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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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기술의 진화보다 생활의 변화에 더 민감합니다. 유통, 물류, 모빌리티 관점에서 사람과 상품의 가치 있는 이동과 공급망 변화가 이끄는 '라이프 플랫폼' 시대를 관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