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법으로 보는 기업 공급망관리(SCM)에 대한 고찰

한때 교통사고 사망자가 세계 1위였고 과속운전, 난폭운전, 보복운전, 뺑소니, 음주운전이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에서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이 너무 무거우니 감형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바로 민식이법 얘기다.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3986

사연은 이렇다.

충남 아산. 온양온천에서 멀지 않은 곳. 사거리가 있었다.

코란도 운전자가 주행신호를 통과해서 어린이 보호구역에 진입했다.

편도 1차선의 도로 반대편에는 신호대기를 하던 차가 한 대 있었다.

코란도는 신호대기를 하던 차를 지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로 진입했다.

하필 길 건너 엄마가 일하던 가게로 가려고 9살 아이가 ‘좌우를 살피지 않고’ 횡단보도를 뛰어 건넜다.

코란도 운전자는 신호대기를 하던 반대편 차 때문에 뛰어오는 아이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치어 버렸다.

코란도 운전자는 너무 갑자기 아이를 치는 바람에 아이를 치고서도 그대로 달렸다.

아이는 사망했다.

부모는 분개한다. 코란도가 과속했다고 주장한다. 인터뷰는 언론과 전파를 타고 그대로 대중에 노출된다.

대중은 분개한다. 당장 중과실로 처벌하는 법을 만들라고 난리 친다.

드디어 이른바 민식이법이 만들어진다.

이번에는 법이 너무 세다며 난리친다.

결정적으로 코란도 운전자는 도로교통안전공단 분석 결과 23.6Km로, 어린이 보호구역 속도제한을 지키며 달렸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다.

횡단보도 보행자 사고가 운전자의 과실 0%로 결론 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횡단보도 사고가 나면 운전자는 무조건 죄인이 되며,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며 이는 운전을 하지 말라는 법이냐고 반대한다.

민식이 엄마 아빠가 이 법으로 감옥 갔으면 좋겠다, 교통법규 무시하는 보행자도 처벌하라는 악담까지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패스트 트랙에 끼어 들어간 이 법은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검토도 못한 채 통과되어 버린다.

그리고 청와대 청원이 진행 중이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이 청원은 2019년 12월 21일 현재 5만 명을 약간 넘긴 상태다.

그나마 과거 음주운전이나 심신미약자 범죄 처벌을 강화하라는 청원보다 관심이 훨씬 덜한 것을 보니 아직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나라 맞다.

기업의 공급망 관리에서도 이런 일들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런 경우도 있다. 수요 예측대로 판매하지 않거나 긴급납기를 상습적으로 요구할 경우, 이를 지양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공장에서는 재고 할당에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그러면 영업부서에서는 당장 우리보고 장사를 하지 말란 얘기냐며 반기를 든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어느 지역으로 수출해야 하는 물건이 있을 때 공장은 리드타임을 감안해서 X주 전에 반드시 발주를 달라고 요청한다. 발주를 받아야 생산을 하고 수출신고를 해서 공장 출하 및 컨테이너선 항차를 태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영업부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발주를 정말 X주 전에 준다. 그러다 보면 공장은 특정 기간에 너무 많은 주문이 몰려 버리기 때문에 제대로 공급을 못하고 오히려 납기를 지키기 힘들어진다. 심한 경우 X주 전이 도래해도 하루만 더를 반복하며 미뤄지기도 한다. 공장은 속이 타들어간다.

​민식이법을 둘러싼 논쟁이나, 기업에서 영업부서와 공장 간의 논쟁은 그 본질이 비슷하다. 규칙을 지키는데 왜 내가 피해를 받아야 하냐는 입장과, 규칙을 지켜도 사고가 나면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는 입장이 충돌한다. 민식이법을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왜 교통법규를 지키고도 난 사고에 대하여 운전자가 일방적으로 책임져야 하느냐’가 아니던가?

왜 이런 논쟁이 발생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규칙만 지킬 줄 알았지,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지 규칙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공급망 관리 업무를 하다 보면 ‘그냥 난 규칙을 지키라고 해서 잘 지키는데 왜 내가 불이익을 받는지 모르겠다’며 변화나 혁신에 동참하지 않는 부서가 참 많다.

이쯤에서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보자.

코란도 운전자가 빠르게 주행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분석 결과는 23.6Km로 추정된다고 한다. 규정속도 이하로 주행한 것이다. 그런데 영상 속 도로 상황에서 그게 정말 정당한 행위로 보이는가?

​어린이 보호구역의 속도 제한을 30Km로 둔 것은 사람이 길을 뛰어 건너는 아이를 보고 멈출 수 있는 속도를 감안해서 정한 것이다. 영상을 잘 보면 알겠지만, 만약 민식이가 횡단보도를 뛰기 시작한 시점에 운전자가 민식이를 봤다면 아마 충분히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민식이는 신호대기중인 차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영상에서는 꽤나 엄숙한 목소리로 분위기 잡고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민식이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필자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이라면 정상적으로 횡단보도 상황이 보이지 않는데 규정속도만 지키면 지킬 거 다 지켰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필자는 얼마 전 볼일이 있어 주택가 이면도로를 운전할 일이 있었다. 토요일 아침이라 인적이 없었고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에 속도를 조금 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앞 차는 이미 저 멀리 사라졌다. 필자는 시속 5~10Km로 달렸다. 그런데 무서웠다.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누군가 갑자기 집 대문을 열고 나올 수도 있고, 하다못해 애완견이 길에 뛰어들 수도 있었다. 필자의 지인들 중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을 데리고 지방 도시를 달리다 보면 이렇게 충고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지방에 가면 교통량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횡단보도에 신호가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천천히 달리라고 충고한다. 성미 급한 사람은 알아서 앞질러 간다고. 차가 알아서 멈출 거라 생각하고 냅다 길을 건너는 보행자도 있다는 것까지 알려 준다.

​코란도 운전자가 시속 23.6Km로 달렸다고 추정된다면 속도계 기준 30Km에 맞춰 놓고 주행했다는 소리다. 당연히 규정 위반은 아니지만 횡단보도 반대편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면 속도를 더 줄였어야 옳다. ‘속도제한은 30Km인데 빼애애액!’ 하고 싶은가? 어떤 이유건 아이를 치는 순간에도 줄이지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면, 운전자는 책임을 다 했으니 벌을 주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차는 그저 쎄리 밟아야 제맛이라고 생각해서 민식이법을 반대하나? 영상 하나를 더 소개한다.

난 운전 많이 했지만 민식이처럼 튀어나오면 사고 못 피한다고? 아니. 운전을 많이 하면 자연스럽게 ‘이 정도 속도에서는 사고 안 나지’라는 타성에 젖어 전방주시를 태만히 하다가 사고를 못 피하는 거지, 내가 능력이 안 되어서 사고를 피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1분 22초부터 나오는 영상은 그 정도 속도면 어린이가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인 상황이고, 3분 12초부터 나오는 영상을 보면 아예 처음부터 서행했기 때문에 그나마 멈출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멈출 수 없을 수도 있다)​

혹자는 왜 어린이 보호구역 사고가 뺑소니보다 더 나쁜 죄 취급을 받아야 하냐고 묻는데….그럼 지금 같은 저출산 사회에서 아이 한 명의 소중함을 간과할 수 있을까. 그만큼의 댓가를 치르는 것을 반대해야 하나? 차라리 이 참에 뺑소니, 음주운전, 유괴 등 각종 범죄의 형량을 다 현실화시켜 버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우리나라 교통사고범죄 형량 약한 거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나라에서 운전을 해 봤지만 우리나라만큼 범칙금, 과태료 약한 나라를 보지 못했다. 필자의 지인 중에는 독일에서 우회전 할 때 보행자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정지하지 않고 서행했다는 이유로 한화 10만 원의 벌금을 냈다는 사람도 있고, 일본에서 80Km 도로에서 120Km로 달리다가 벌금 60만원을 낼 뻔한 사람도 있다.

비록 민식이법이 형평성에 어긋나고 가혹해 보이는 것은 맞지만, 이번 기회에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속도를 제한하도록 만든 법의 목적이 전방위에서 보행자의 통행 안전을 고려해서 운전하라는 뜻인 것으로 이해하고, 다른 교통법규 역시 형량을 현실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린이 보호구역 속도위반 사고가 이 정도 처벌을 받으니 음주운전, 뺑소니는 3대가 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자, 이 말이다.

공급망 관리도 마찬가지다.

수요 예측대로 판매하라는 것은 신(神)이 되어라는 뜻이 아니라 미리 납품처와 판매 및 재고 현황을 충분히 공유하고 발주량을 정하라는 뜻이지, 무조건 예측한 대로 팔라는 뜻이 아니다.

X주 전에 발주를 내라는 것은 비록 말은 안 하지만 X+2주 전에는 납품처와 발주량을 협의하고, X+1주 전에 공장과 발주량을 협의해서 내라는 뜻인 것이다. X주 전이 도래했을 때 부랴부랴 공장하고 회의하자, 발주량 확정하자면서 그러지 않아도 납기 못 맞추는 공장이 더 납기 못 맞추는 상황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규칙을 그렇게 이해하면 납품처와 발주량을 협의하기 위해 그만큼 판매량과 프로모션 등을 더 열심히 관리하게 된다.

군 복무를 하며 물류에 뜻을 둔 이후 제조업체 IT일을 하며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중. 은유와 위트 넘치는 독특한 필체와 외부강의 경험으로 더 생생한 물류와 공급망 관리의 세계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는 은둔자